지역의료 혁신 나선 ‘선병원’…중증·응급 치료 허브로

지역의료 혁신 나선 ‘선병원’…중증·응급 치료 허브로

유성선병원, 거점지역응급의료센터 가동
지난해 KTAS 1~2등급 환자 급증…전년 대비 35%↑
암 수술 건수 61% 껑충…“진료과 협진 우수”
“의료체계 허리 2차 병원 기능 강화해야”

기사승인 2025-05-09 06:00:09
대전 유성구 유성선병원 전경. 유성선병원 제공

# 경북 상주에 거주하는 64세 A씨는 지난해 4월 갑작스러운 고열 증세를 겪기 시작했다. 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이었다. 지역 병원에서 치료받던 중 고열과 의식 저하, 객혈 증상이 계속돼 병원은 인근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들은 모두 수용이 어렵다고 거절했고, 대전선병원 감염내과가 A씨를 받기로 결정했다.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 결과 폐 병변이 확인됐다. 이어 결핵이 의심돼 중환자실 내 격리병실에 입실했다. 치료를 이어가던 중 의료진은 정밀검사를 통해 ‘침습성 폐 아스페르길루스증’이라는 중증 곰팡이 감염 질환을 새롭게 진단해 즉시 항진균제 치료를 시행했다. 의료진의 집중 치료와 관찰 아래 A씨는 상태가 점차 호전돼 퇴원할 수 있었고, 꾸준히 항진균제를 복용하며 외래진료를 이어갔다. A씨는 장기간의 치료 끝에 지난 2월 완치돼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의료법인 영훈의료재단 유성선병원과 대전선병원이 세종·대전·충청지역 중증·응급환자 치료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내 2차 병원이 공공성과 전문성을 아우르는 지역의료 허브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역할을 재정립하고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선우 대전선병원장은 7일 유성선병원에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을 만나 “서울의 큰 병원이면 환자를 잘 보고, 작은 지방 병원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며 “의료대란 사태 속에서 우리 병원이 이를 증명했다”고 밝혔다.

남선우 대전선병원장이 7일 유성선병원에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을 만나 병원을 소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1966년 선정형외과로 출발한 대전선병원은 328병상에 전문의 67명을 둔 종합병원(2차 의료기관)으로 성장했다. 1985년 개원해 올해 증축에 나선 유성선병원도 병상 387개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전문의 95명, 간호사 445명을 두고 지난해 12월부터 거점지역응급의료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유성선병원은 응급의료센터를 통해 KTAS(한국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 기준) 1~2등급의 중증·응급환자를 우선적으로 수용하고, 응급 상황 발생부터 최종 치료까지 책임지는 중추적인 응급의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종합병원과 전문병원을 키워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리지 않도록 하는 ‘포괄 2차 종합병원 육성 방안’을 추진 중이다. 포괄 2차 병원은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기능을 모두 갖추고 급성기부터 만성기까지 환자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역 종합병원을 뜻한다. 대전선병원과 유성선병원은 지역 환자는 물론 타 병원에서 의뢰된 환자를 책임지고 치료하는 우수 2차 병원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다른 병원에서 두 병원으로 진료 의뢰된 환자는 2만8918명이다. 3차 병원(상급종합병원)에선 3165명의 환자를 의뢰받아 치료했다.

대전·유성선병원은 지난해 2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의정갈등 상황에서 환자 불편을 최소화하고 중증·응급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일정 부분 기여해왔다. 특히 3차 병원으로 가는 환자를 받아 전공의 이탈에 따라 인력 공백이 생긴 병원들의 부담을 크게 덜었다. 선병원 응급의료 대응 현황에 따르면, 2023년 1698명이던 KTAS 1~2등급 환자는 2024년 2287명으로 35% 증가했다. 진료과별로 보면 신경외과는 262명에서 342명으로 31% 증가했고, 호흡기내과는 99명에서 190명으로 92%, 감염내과는 31명에서 64명으로 106% 늘었다.

특히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심뇌혈관질환 시술 건수가 급등했다. 심혈관질환 시술인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은 2023년 574건에서 지난해 749건으로 30%, 뇌혈관질환 시술인 뇌혈관중재술과 개두술은 각각 11%(118건→131건), 14%(126건→144건) 증가했다. 선병원은 암 치료 부문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2023년 633명이던 타 병원에서 의뢰된 암환자는 지난해 723명으로 14% 늘었다. 암 수술 건수는 100건에서 161건으로 61% 뛰었다. 남 병원장은 “각 진료과 간의 원활한 협진과 체계화된 시스템으로 여러 환자군에 대응할 수 있는 점이 우리 병원의 강점이다”라고 소개했다.

구용평 유성선병원 진료부장은 7일 유성선병원에서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을 만나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하고 2차 병원의 기능과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의료공백 상황에서 선병원이 지역 포괄 2차 병원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의료진은 이대로는 의료체계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1차·2차·3차 병원으로 나뉜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차 병원 진료를 건너뛴 채 지역 제한 없이 1차 병원에서 곧장 3차 병원 진료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는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구용평 유성선병원 진료부장(외과 전문의)은 “사람이 허리가 튼튼해야 모든 신체기관이 건강한 것처럼 의료체계에서 허리 역할인 2차 병원이 안정적이어야 환자 진료 기능을 잘 유지할 수 있다”며 “1차 병원 환자가 2차 병원으로 넘어가고, 2차 병원 환자가 3차 병원에 의뢰되는 순차적 전달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차 병원과 3차 병원 간의 역할이나 평가 기준의 손질도 필요하다고 했다. 구 진료부장은 “2차 병원이 3차 병원을 억지로 쫓아가게 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 2차 병원의 기능을 구체화·특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흉부외과의 경우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병원 평가 기준을 대형병원 수준과 동일하게 설정해서 중소병원들은 좋은 평가를 이어가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손실을 감수하고 의료진을 모집하는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또 “앞으로 2차 병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 아래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