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공평한 재난은 없다 [데스크 창]

모두에게 공평한 재난은 없다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8-01 14:40:52 업데이트 2025-08-01 14:44:50
폭염 경보가 내려진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자연의 법칙은 더이상 공평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던 원칙과 질서는 기후 위기 앞에서 무너졌다. 산업화 이후 탄소를 많이 배출해 온 곳들은 선진국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후 변화로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는 건 가난한 나라와 그 국민이다.

기후 불평등은 국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사회 안에서도 경계가 뚜렷하다. 장애인, 고령층,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경제 취약 계층은 기후 재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큰 피해를 본다. 어떤 이에겐 단지 불편함에 그칠 일이, 다른 이에겐 생사의 문제가 된다. 기후 위기 자체보다, 그것을 견디는 사회적 구조가 더 차별적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난 2024년 2월, 박종철 공주대 지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폭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사회경제적 격차를 중심으로 분석한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건강보험 빅데이터(2011~2020년, 7개 대도시)를 활용해 장애인과 기타 취약계층의 폭염 위험을 비교했다.

그 결과, 장애인의 폭염 상대위험도는 비장애인보다 1.6배 높았다. 특히 장애가 있는 청년(5.305)이 비장애 고령자(4.287)보다 더 높은 위험이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특성 가운데 폭염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요인도 장애였다. 그 뒤를 고령자, 실외노동자, 저소득층이 이었다.

장애인은 노동시장 진입이 제한되고, 의료비 부담까지 겹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냉방기기 사용조차 부담스러운 환경 속에서 에너지 빈곤 문제는 자연스레 발생한다. 무더위 쉼터조차 장애인에게는 물리적 접근성이 낮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건 고령층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7일,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도쿄 23구 내에서 에어컨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해 사망에 이른 사례가 213건에 달했다는 도쿄대 연구팀과 도쿄도 감찰의무원의 공동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조사는 2013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도쿄 23구 내에서 온열 관련 사망으로 추정되는 총 1447건의 사례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사망자의 약 80%는 독거노인 또는 고령자 가구였다. 실내 사망자의 40% 이상은 에어컨이 꺼져 있었고, 에어컨이 켜져 있더라도 설정 오류, 필터 막힘, 고장 등으로 인해 정상 작동하지 않아 사망에 이른 사례도 다수 확인됐다. 에어컨 설정이 냉방이 아니라 난방으로 되어 있었거나, 리모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던 점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계가 있어도 그것을 쓸 수 없었던 사람들이 죽어갔다.

기후 위기는 소득을 기준으로도 사람을 나눈다. 지난달 7월, 경북 구미시 산동읍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20대 이주노동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그날은 A씨의 첫 출근날이었다. 당시 현장 기온은 38도, 그의 체온은 40도를 넘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돌아오지 못했다. 당국은 온열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고온의 환경에서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생계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노동이다. 온열 질환 예방을 위한 작업 중지, 휴식, 냉방 조치 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청, 파견, 단기 계약자일수록 사업주 책임이 흐려져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기후 재난 앞에서 생존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가진 것의 여부에 달려 있기도 하다. 지난 2021년 여름, 인천 서구 가좌동에서 전단지를 돌리던 20대 청년 B씨가 열사병으로 사망했다. 길가에서 쓰러졌을 당시, 그는 생수 한 병 살 돈이 없었다. 수중엔 아버지 앞으로 나온 장애인 교통카드뿐이었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아들이었던 그는 수급비가 깎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정규직 일자리를 갖기 어려웠다. B씨는 폭염특보가 내려진 그날도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기후 위기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과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의 문제다. 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말은 절반만 맞다. 기후 위기는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공평한 재난은 없지만, 공평한 안전은 만들 수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개인의 생존을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기반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