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알루미늄·구리에 한해 관세 50%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이미 부진을 겪고 있는 철강업계가 더 큰 악재를 맞았다. 정부가 이른바 ‘K-스틸법’을 추진하며 속도를 내고 있지만, 막대한 관세를 넘어 반등을 모색하려면 더욱 적극적인 지원책들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7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회철강포럼 공동대표인 어기구(더불어민주당)·이상휘(국민의힘) 의원과 여야 106명의 의원들은 한국 철강산업 지원을 위한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 철강 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을 지난 5일 공동 발의했다. 철강 관련 △대통령 직속 정책기구 설치 △탄소중립 R&D 지원 △특구 지정 △수입규제(반덤핑 관세 등) 강화 등 철강산업을 국가 책임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골자다.
중국산 공급 과잉 등으로 장기간 부진을 겪고 있는 철강업을 살리기 위한 방안은 그간 꾸준히 논의돼 왔지만, 미국 관세 협상 과정에서 고율의 관세를 축소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해당 법안 추진을 더욱 가속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협상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자동차 등을 포함한 대다수 업종의 관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으나, 철강·알루미늄·구리 등 핵심 소재 품목은 50%가 유지됐다. 한국보다 먼저 협상을 타결한 일본, 유럽연합(EU)도 철강 관세만큼은 낮추지 못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관세 협상 직후 “철강에 50% 관세가 부과돼 있어 여러 면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음에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 관세 유지) 의지가 굉장히 강했다”고 설명했다. ‘쿼터제 부활’ 등 대체 방안 제안도 효과가 없었다는 후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의 고율 관세를 유지한 것은 우선 철강 관세 50%가 적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앞서 3월 철강 관세 25%를 부과한 데 이어 6월에는 50%로 끌어올렸는데, 이에 대한 경제효과를 판단한 뒤 협상을 고려할 것이란 전망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을 ‘안보산업’으로 여기고 있는 데다, 미국 철강산업의 메카 ‘러스트벨트(중서부~북동부 공업지대)’의 백인 남성 노동자 지지층을 견고히 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실제로 관세 협상 기간이었던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철강협회(AISI)는 트럼프 대통령에 서한을 보내 “일본, 한국 등의 국가가 세계 철강 과잉 공급에 대한 대응보다 철강 관세 면제를 요청하지만 상호관세 조정을 이유로 이들 국가에 철강 관세를 면제할 근거가 없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수출 비중 가장 높은 대미 철강…“수익성 악화 전 법안 시행돼야”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 공급 과잉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에서 미국 관세 50%라는 거대한 벽을 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액은 43억4700만달러로, 전체 철강 수출의 13.1%를 차지했다. 국가별로는 가장 높은 비중이다. 특히 지난해까지 실적 측면에서 저점을 찍은 뒤 중국 감산 효과 등에 따라 하반기 반등이 점쳐지고 있던 상황에서 또 다시 수렁에 빠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모든 나라가 대미 수출에 있어 관세 50%를 적용받고 있긴 하지만, 현재 국내 철강업계의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율 관세가 유지되는 점에 대해 업계 모두가 근심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업계 관심은 K-스틸법의 추진 속도에 집중된다. 발의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실제 현장에 최종 적용되는 데까지 최소 수개월 단위가 소요되는 만큼, 그 사이 시차를 두고 관세 50%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나아가 K-스틸법을 비롯해 더욱 폭넓은 관점의 지원책들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포스코그룹 계열사 노동조합이 연대한 ‘포스코그룹 노조연대’는 지난 6일 자료를 내고 “K-스틸법을 전폭 환영한다”면서도 “철강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관세 등 정부 차원의 전방위적 외교 노력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인상돼 온 산업용 전기요금의 감면, 수소환원제철 등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매우 집중적인 재정·정책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K-스틸법 발의에 참여한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철강산업이 현재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