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사고로 본 북한 시장경제의 진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시스템 사고로 본 북한 시장경제의 진화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8-08 13:00:04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1. 시스템 사고로 본 평양 시장경제
 
평양의 시장경제는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었다. 이는 북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행태적 적응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특히 시스템 사고의 관점에서 평양 시장경제의 순환구조를 분석하면, 다양한 경제 주체와 정책 그리고 사회적 행위가 상호작용을 해 어떻게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 사고는 복잡한 사회경제 현상을 서로 연결된 요소들의 피드백 고리의 순환과정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이다. 특히 구조가 행태를 결정하고 행태가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구조는 요소와 관계를 행태는 사건과 패턴에 관한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평양 시장경제는 과거 폐쇄적 계획경제에서 시작해 경제난을 거치며 자생적 시장경제가 등장하고, 다시 국가와 민간이 얽힌 복합적 순환 체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구조적이고 행태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 



2. 평양 시장경제 구조 : 요소와 관계

1) 21가지 주요 요소 도출 과정

북한의 시장경제는 중앙 계획경제 체제 아래 존재하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그 실체가 점차 주목받고 있다. 제도적 통제가 강한 북한 사회에서 시장경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총 21가지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복합적 시스템 구조를 추출했다. 

평양 시장경제 21가지 요소 도출 과정은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졌다.

1단계 : 북한 내부의 경제활동에 관한 평양 지역 출신 100여 명의 질적 자료를 수집했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직업군의 탈북자 인터뷰, 문헌 자료, 경험적 관찰 등이 포함된다.

2단계 : 수집된 정보를 시스템 사고에 기반 해 세 가지 범주—‘여성의 경제활동’, ‘자본과 부의 축적’, ‘권력과 통제’—로 분류했다.

3단계 : 평양 시장경제 내에서 실제로 순환을 유도하거나 작동을 매개하는 핵심 요소들을 선별했다.

4단계 : 요소 간의 상호작용과 네트워크 형성 가능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21개의 요소를 선정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주목받은 첫 번째 범주는 ‘여성의 경제활동’이다. 북한의 공식 배급 시스템이 약화하면서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여성들은 시장의 실질적인 중심축이 되었다. 주로 시장(장마당), 인민반, 도매 장사, 메뚜기 시장, 상점, 가내수공업, 성매매 등의 영역에서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시장경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핵심 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두 번째 범주는 ‘자본과 부의 축적’이다. 돈주(신흥 자본가), 부동산, 뇌물, 무역회사, 운송업, 합의제 식당, 밀수 등은 시장 내 자본의 유통과 축적, 투자 및 소비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요소들은 자금을 순환시키고 새로운 부를 생성하는 중요한 경로가 되며, 평양 시장경제의 성장과 활력을 이끄는 원동력이다.

세 번째는 ‘권력과 통제’의 범주이다. 이는 시장경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 권력과의 관계, 규제, 통제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영역이다. 중앙당, 교육, IT, 안전부, 농장, 거간꾼, 비공식조직 등이 이 범주에 속하며, 이들은 공적·사적 영역 모두에서 경제활동을 통제하거나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공식적인 국가기관뿐 아니라 비공식 네트워크나 중개자들이 시장의 질서와 규칙, 거래 과정에서 중요한 중간 매개로 작용한다.

평양 시장경제 구조를 대표하는 총 21가지 요소는 질적 분석과 현장 자료, 그리고 시스템사고의 분석 틀에 기반 해 도출된 결과이다. 그 기본적인 기능을 간략히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시장 : 상품·서비스 유통의 중심 공간

2. 인민반 : 주민 공동체 및 정보 유통

3. 도매 장사 : 상품 대량 유입·공급

4. 메뚜기 시장 : 유동적 임시 시장, 노점 활성화

5 상점 : 공식 판매점, 상품 유통 채널

6. 가내수공업 : 소규모 생산, 가족경제 기반

7. 성매매 : 비공식 서비스 경제, 생계 보조

8. 돈주 : 자본 제공·투자, 사(私)금융 주도

9. 부동산 : 부동산 거래, 투자·임대 수입

10. 뇌물 : 비공식 거래 촉진, 제도 적응 수단

11. 무역회사 : 외부 물자·자본 유입 경로

12. 운송업 : 상품·자본 유통, 공급망 유지

13. 합의제 식당 : 협동 경영, 식품·서비스 제공

14. 밀수 : 통제 회피, 외부 상품·자본 유입

15. 중앙당 : 정책·감독, 규제와 통제

16. 교육 : 인적 자원 양성 및 관리

17. IT : 정보 인프라, 통신 및 시장 정보 유통

18. 안전부 : 시장·사회의 질서·감시

19. 농장원 : 식량·원재료 생산 공급

20. 거간꾼 : 중개·알선, 네트워크 연결자

21, 비공식 조직 : 비공식 네트워크·적응 조직



2) 21가지 주요 요소와의 관계

평양의 시장경제는 다양한 경제·사회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움직이는 복합 시스템이다. 각각의 요소는 독립적이면서도 상호작용과 피드백을 통해 전체 시장경제의 순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각 영역(권력, 자본, 시장) 내부에서도 정보, 인력, 자본, 서비스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권력은 교육, 정보 조직, 경찰, 브로커, 농장 노동자 등 다양한 하위 주체들이 상호 연결되어 권력의 영향력을 확장한다. 자본은 무역회사, 부동산, 밀수, 식당 등 다양한 경제활동이 서로 연결되어 자본의 축적과 유통이 이루어진다. 시장은 인민반, 도매, 상점, 골목시장, 성매매, 가내수공업 등 다양한 경제활동이 여성 주도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삼각 구조(권력–자본–시장)의 핵심 연결고리로는 조선노동당(권력), 자본가(돈주), 시장(여성) 세 축이 시장경제 시스템의 중심을 이룬다. 이 세 축은 각각 내부적으로 다양한 하위 요소(예: 거간꾼, 안전부, 무역회사, 상점 등)와 연결되어 있고, 서로 간에도 강한 상호작용을 보인다.

▶권력 ↔ 자본 : 뇌물과 독점이 주요 연결고리이다. 자본가들은 권력기관에 뇌물을 제공해 시장 진입, 사업 독점, 단속 회피 등 특권을 얻고, 권력은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과 통제력을 유지한다.

▶권력 ↔ 시장 : 허가, 면허가 핵심 연결고리이다. 시장(여성 주도 상공인 등)은 권력으로부터 공식적·비공식적 허가를 받아야 합법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권력은 이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고, 시장은 권력과의 거래를 통해 생존 기반을 확보한다.

▶자본 ↔ 시장 : 투자와 이윤이 중심이다. 자본가들은 시장(상점, 도매, 가내수공업 등)에 투자하여 이윤을 창출하고, 시장은 자본의 유입으로 상품 다양화, 유통망 확장, 경제 활성화를 이룬다.

이 구조는 권력, 자본, 시장(여성)이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뇌물·허가·투자·이윤 등 다양한 매개를 통해 북한 시장경제의 독특한 순환과 진화를 이끈다. 각 요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의 생존과 성장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며, 이 복합적 상호작용이 평양 시장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3. 평양 시장경제 행태 : 사건과 패턴

평양 시장경제는 단순한 거래의 집합이 아니라, 권력, 자본, 시장(여성)이라는 세 축이 유기적으로 얽혀 돌아가는 복합적 시스템이다. 시스템 사고 구조도는 이 세 주체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며, 시장경제의 순환과 진화를 이끌어왔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북한 경제의 주요 변곡점인 고난의 행군(1994~1998), 7.1경제조치(2002), 종합시장 도입(2003), 화폐개혁(2009), 신경제관리조치(2012), 기업소법 개정(2014) 등은 모두 이 세 축의 역학관계 변화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난의 행군 시기 국가 배급 체계가 붕괴하자 여성들이 주도하는 장마당이 자생적으로 등장했고, 권력은 이를 단속과 허가, 뇌물 등 다양한 방식으로 통제·관리하며 시장의 일부를 제도권에 흡수했다. 7.1경제조치와 종합시장 도입은 시장의 공식화와 자본가(돈주)의 등장을 촉진했고, 화폐개혁과 신경제관리조치는 다시금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이어졌다.

평양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뚜렷하다. 

첫째, 권력은 허가, 면허, 독점 부여를 통해 시장과 자본을 관리하고, 뇌물을 통해 비공식 이익을 취한다. 

둘째, 자본가는 투자와 뇌물로 권력과 시장에 접근하며, 시장에서 얻은 이윤을 재투자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장한다. 

셋째, 시장은 여성 주도의 상행위, 가내수공업, 골목시장 등 다양한 형태로 자생적 경제활동을 전개하고, 권력과 자본의 틈새에서 생존과 적응을 반복한다.

이러한 삼각 구조는 공식과 비공식, 합법과 불법, 통제와 자율이 혼재된 북한식 시장경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각 주체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뇌물·허가·투자·이윤 등 다양한 매개를 통해 서로 얽혀 있다. 이 복합적 상호작용이 평양 시장경제의 생명력과 변화의 동력이다.

결국 평양 시장경제의 진화는 사건(정책 변화, 위기, 제도 도입 등)과 패턴(삼각 구조의 반복적 상호작용)이 맞물리며, 시스템 전체가 끊임없이 적응하고 재구성되는 과정이다. 시스템사고 관점에서 볼 때, 북한 시장경제의 미래 역시 이 역동적 구조와 행태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4. 북한 시장경제의 복합적인 진화

평양 시장경제의 진화는 국가 주도 계획경제에서 자생적 시장경제(민간 위탁 시장경제), 그리고 민간 주도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는 구조적 변동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국가 배급 체계가 붕괴하면서,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에 자생적인 시장(장마당)이 등장했고, 이는 공식·비공식, 국가·민간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는 복합적 경제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평양 시장경제는 공식과 비공식, 통제와 자율, 합법과 비합법이 혼재하는 이중구조로 진화했다. 2009년 화폐개혁을 통하여 신흥 자본가(돈주), 상인, 소비자 등 다양한 경제 주체가 국가를 믿지 않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정신이 싹트면서 생산수단의 사유화와 유통 네트워크의 발전, 외화 거래의 일상화, 시장의 현대화 등 실질적 변화가 이어졌다. 김정은 시대 들어 시장경제의 제도화와 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평양은 전국 유통망의 허브이자 새로운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경제적 현상을 넘어, 사회적·제도적 구조와 주민 행태가 맞물려 새로운 경제 질서가 창출되는 시스템적 진화의 결과다. 북한 경제는 여전히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외피를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장화·사유화가 주민들의 삶과 경제활동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평양 시장경제의 진화는 앞으로도 더욱 복잡하고 역동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