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표=대한제분’ 아니다?…밀가루와 가공식품 나뉜 상표권 진실

‘곰표=대한제분’ 아니다?…밀가루와 가공식품 나뉜 상표권 진실

기사승인 2025-08-28 06:00:05 업데이트 2025-08-28 11:23:35
대한제분 곰표 상표 사용 제품 이미지. 대한제분 제공

‘곰표’는 소비자에게 대한제분의 브랜드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실제 상표권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밀가루류는 대한제분이 맡고, 국수 등 가공식품은 영동식품이 보유한 구조다. 지난 2001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양사의 권리 범위가 명확해졌지만, 이후 브랜드 확장과 계약 과정에서 균열이 생기며 분쟁은 다시 불거졌다.

28일 지식재산정보넷(KIPRIS)에 따르면, 대한제분은 1955년 곰표 상표를 밀가루 부문에 등록했다. 이후 영동식품이 1982년에 국수·가공식품 분야 상표를 따로 등록하면서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대한제분은 국수류로 곰표 브랜드를 확장하려 했지만, 이미 해당 상표는 영동식품이 확보한 상태였다.

1990년대 들어 대한제분은 영동식품 상표의 존속 갱신을 무효화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2001년 대법원은 영동식품의 손을 들어줬다. 쿠키뉴스가 입수한 당시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대한제분은 밀가루와 곡물가루 부문에서는 곰표 상표를 널리 사용해 인지도가 있었지만, 국수 제품에서는 사용 실적이 없었다.

반면 영동식품은 이미 국수를 생산·판매하며 상당한 매출을 기록하고 있었다. 법원은 “밀가루와 국수는 거래 양상과 수요층이 달라 혼동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오늘날까지 이어진 상표 공존 구조의 출발점이 됐다. 

대한제분(위)과 영동식품(아래) 곰표 브랜드 상표권 이미지. 특허청 캡처, 영동식품 제공

협력의 시작, 불신의 그림자

두 회사는 한동안 큰 갈등 없이 공존했다. 2020년 유통업계에 불어닥친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대한제분이 브랜드 확장을 추진하던 시기에 양측은 협력 관계를 맺었다. 영동식품에 따르면 자사가 보유한 곰표 상표의 사용을 2년 간 무상으로 허락했고, 대한제분은 이를 활용해 국수, 떡볶이, 핫도그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협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한제분이 칼국수, 오트밀 등 계약 대상이 아닌 품목에 상표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국 수출 과정에선 국내로 제한된 ‘곰표 국수’ 표기를 무단으로 쓴 것으로 영동식품은 확인했다. 영동식품은 대한제분이 ‘곰표맛다시’ 등 유사 상표 55건을 출원했다고도 밝혔다.

쿠키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영동식품은 내용증명을 통해 “계약 범위를 벗어난 무단 사용”이라고 항의했다. 대한제분은 답변서에서 “직원 관리 부실에 따른 착오”라며 사과와 로열티 정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영동식품은 같은 해 7월 법률대리인을 통해 “무상 허락을 발판 삼아 (상표권) 침해를 시도했다”고 짚었다. 

대한제분 측은 협력이 깨진 원인이 영동식품에 있다고 봤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2022년 말부터 재계약을 협의했으나, 2023년 3월 말에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최종 의사를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주장했다. 이후 시중에 판매 중이던 제품을 전량 회수했고, 재고 폐기 비용 역시 부담했다는 설명이다. 

곰표 갈등, 다시 법정으로

갈등은 결국 형사 사건으로도 번졌다. 영동식품은 지난해 대한제분과 임원진 등을 상대로 상표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이달 초 검찰은 혐의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영동식품은 협력 관계에서 지켜야 할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한다. 영동식품 관계자는 “계약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인데, 대한제분이 유사 상표를 다수 출원하고 계약 대상이 아닌 품목에도 ‘곰표’를 사용한 것은 명백한 신뢰 위반”이라며 “특히 해외 수출 과정에서 ‘곰표 국수’라는 표기를 무단 사용한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곰표 브리또 제품 이미지. 영동식품 제공

법적 다툼은 진행 중이다. 대한제분은 최근 영동식품을 상대로 상표권 부정 사용 취소심판을 청구했다. 대한제분 관계자는 “영동식품은 계약을 종료한 후 대한제분이 계약을 해지했던 업체들과 직접 상표사용 계약을 체결하고 ‘곰표’ 상표를 사용한 유사 제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동식품의 상표 및 패키지 변경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대한제분 상품으로 오인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대한제분이 쌓아 올린 브랜드 가치에 무단 편승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영동식품 측은 “실사용 상표의 유사성은 ‘곰표’ 문자와 곰 도형으로 이뤄진 등록 상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색 조합이나 특정 서체처럼 단순히 미감을 위한 디자인 요소는 상표 본질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영동식품 관계자는 “대한제분은 자금력과 마케팅으로 소비자 인식을 독점하려 한다”며 “이미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권리를 뒤집으려는 것은 부당하다”고 전했다. 또 “계약 기간 동안 무상으로 대한제분의 상표 사용을 허락했지만, 약속을 벗어난 사용이 이어졌다”며 “결국 자본력으로 중소기업을 압박하는 구조가 반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분쟁을 상표권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례로 보고 있다. 같은 브랜드라도 상품군별로 권리가 제한되는데, 실제 시장에선 경계가 혼용되며 소비자 혼동과 분쟁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사안은 단순히 상표법 해석을 넘어, 협력 관계 책임까지도 함께 제기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국 최종 판단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오영진 변리사는 “곰표처럼 동일 브랜드가 품목별로 나뉘어 있는 경우 각 상표권자가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동일 상품군 안에서만 인정된다”며 “밀가루와 가공식품처럼 다른 상품군에 걸쳐 동일 상표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오 변리사는 “실제 시장에서는 상품군 경계가 혼용되는 사례가 있어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