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위크 시즌에 동대문을 오면 활기 넘쳐서 좋아요. 서울도 언젠가 패션의 메카로 인정받기를 바랍니다.”
5일 낮기온 32도 불볕더위만큼 서울패션위크 현장은 패션 열기로 뜨거웠다. 현장은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과 개성 있는 스타일을 선보이는 관람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글로벌 무대 도약을 꿈꾸는 수많은 K-패션 브랜드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입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날 패션위크가 열리고 있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찾은 김한나(27·여)씨는 “일부러 꾸며 입고 나왔어요. 패션위크에 오면 다양한 브랜드를 직접 볼 수 있고, 사진도 찍으면서 즐길 수 있어 늘 기대된다”고 전했다.

DDP 아트홀 1관에서 열린 리이(RE RHEE)의 2026 SS 컬렉션은 이번 시즌 주제 ‘프랙티컬 포엣(Practical Poet, 실용적인 시인)’을 통해 옷이 감성과 현실을 잇는 매개체임을 강조했다.
이준복·주현정 디자이너 듀오는 “시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 들리지 않는 감정을 꺼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하며, 옷을 언어 삼아 시적 감성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무대 위 의상들은 구조적 테일러링 위에 시적인 디테일을 얹어 ‘감정은 언제나 말보다 느리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전했다. 컬렉션은 모던 뉴트럴 톤을 기반으로, 크리미 바질과 모브 핑크 컬러를 포인트로 균형을 완성했다.
이번 컬렉션은 소재와 실루엣에서도 다채로운 시도를 보여줬다. 실크와 새틴을 활용한 빅사이즈 실루엣은 각이 뚜렷하게 잡히지 않고 부드럽게 흐르며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흩날렸다. 쉬폰 소재 역시 바람결에 흔들리듯 가벼운 질감을 강조하며, 시각적으로는 낯설면서도 시적인 여운을 남겼다.
여름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레이어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도 눈길을 끌었다. 포인트 컬러는 단순히 밝은 색에 치우치지 않고, 저채도의 다양한 톤을 폭넓게 사용해 컬렉션 전체에 깊이를 더했다. 린넨과 같은 내추럴한 소재의 활용 역시 계절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선택으로 보였다.
설치미술가 홍수진과의 협업도 눈길을 끌었다. 무대 곳곳에 배치된 오브제와 조형물은 ‘옷은 곧 시’라는 메시지를 또 다른 각도로 풀어내며,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리이는 이번 협업을 통해 패션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시도하며 브랜드 정체성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준복 디자이너는 “옷이 시가 되고, 시가 곧 현실이 되는 순간을 선물하고 싶었다”며 “스타일에 그치지 않고 감정과 기억을 담은 하나의 작품으로 컬렉션을 감상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관객들은 런웨이가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나누며 디자이너가 의도한 메시지를 되새겼다.

서울시는 신진 디자이너 발굴과 글로벌 진출 지원을 위해 ‘하이서울패션쇼’를 병행했다. 지난 4일부터 이틀간 DDP 패션몰 5층 서울패션창작스튜디오에서 열린 이 쇼는 ‘2025 F/W’와 ‘2026 S/S’ 두 시즌을 동시에 공개해 신진 브랜드의 다양성을 선보였다.
올해는 TROA, 발로렌, 에트왈, 아이엠제이, 신:서울, 존앤321, 한작, 란제리한 등 8개 브랜드가 참여했다. 각 브랜드는 1일 4회, 총 8회의 단독 쇼를 열어 자신들의 세계관을 무대 위에 펼쳤다.
홍재희 하이서울쇼룸 운영사 제이케이디자인랩 대표는 “서울시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하이서울쇼룸은 매 시즌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그립, W컨셉 등 영향력 있는 플랫폼과 협업을 통해 신진 디자이너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하이서울쇼룸이 글로벌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K-패션이 세계 패션계와 본격적으로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