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광그룹이 애경산업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열리면서 애경산업이 리브랜딩을 발판 삼아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인수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거래가 성사된다면 루나·에이지투웨니스·케라시스 등 국내외에서 잘 알려진 브랜드들의 리브랜딩과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각화 전략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태광산업과 티투프라이빗에쿼티(PE), 유안타인베스트먼트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애경산업 지분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AK홀딩스 등 애경그룹이 보유한 약 63% 지분이 매각 대상이며, 최종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은 연내로 예상된다. 다만 애경 측은 “매각 관련해서는 밝힐 수 있는 입장이 현재로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태광그룹은 애경산업 인수를 통해 화장품 사업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K-뷰티의 글로벌 인기를 발판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공략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이를 뒷받침할 자금 여력도 있다. 지난 5월 기준 태광산업의 유동자산은 2조7692억원으로, 기존 현금성 자산 1조9445억 원에 더해 SK브로드밴드 지분 매각으로 8038억원을 확보했다.
다만 본업인 섬유와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은 부진해 사업 구조 전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가 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애경산업 매각 추진 배경 중 하나도 그룹 전반의 실적 부진이 지목된다. 애경산업 최대주주인 AK홀딩스는 올해 상반기 매출 1조88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0% 감소했고, 영업손실 517억원, 순손실 269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같은 기간 애경산업 매출은 3224억원으로 전년 동기(3427억 원) 대비 5.9% 줄었으며, 영업이익 역시 339억원에서 172억원으로 49.3% 급감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실적 악화가 알짜 계열사 매각을 앞당긴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가 주목하는 대목은 인수 성사 이후 펼쳐질 브랜드 재편 방향이다. 애경산업은 색조 브랜드 루나, 쿠션 파운데이션으로 유명한 에이지투웨니스, 생활용품 라인업인 케라시스·2080 등 폭넓은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국내 시장에서 브랜드 노후화 지적이 잇따르면서 리브랜딩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태광의 자본력과 유통 채널이 결합할 경우, 이 브랜드들이 새 옷을 입을 수 있을지가 관전포인트다.
해외 확장 가능성도 크다. 애경산업의 화장품 매출은 이미 70%가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중국 중심의 시장 구조를 일본·동남아·미국으로 다변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미국 아마존 입점, ‘투에딧’ 브랜드의 미국 오프라인 진출, 글로벌 편집숍 입점 확대 등이 대표적이다. 태광이 새 주인이 된다면 현지 마케팅과 투자 여력이 늘어나면서 글로벌 진출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평가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애경산업의 가장 큰 과제는 노후화된 브랜드 이미지다. 태광 인수 여부와 관계없이 브랜드 재정의 작업은 불가피한 시점”이라며 “루나와 에이지투웨니스는 중국 시장에서 한때 성공했지만, 국내 MZ세대와의 접점은 약해진 상황이다. 단순히 자금을 투입하는 차원을 넘어 브랜드 정체성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하느냐가 인수 후 성패를 가를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동남아·미국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려는 현 전략은 방향이 맞지만, 글로벌 마케팅과 현지 유통망 확대에는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며 “태광이 자본력과 미디어 채널을 접목할 경우 리브랜딩과 글로벌 확장을 동시에 가속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