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의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전국법원장회의가 12일 열린 가운데,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 발표에 관심이 쏠린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각급 법원장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대회의실에서 전국법원장회의 임시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의제가 민감한 사안인 만큼 회의는 오후 늦게 끝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임시회의는 법원행정처장을 의장으로 하는 고위 법관 회의체로, 통상 매년 12월 정기회의를 열지만 필요 시 임시회의도 개최할 수 있다.
이번 회의는 천 처장이 지난 1일 각급 법원장들에게 민주당이 추진하는 사법개혁 5대 의제와 관련해 법관들의 의견 수렴을 요청하면서 소집됐다. 논의 대상은 △대법관 수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법관평가제도 개편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 사법개혁 5대 의제다.
민주당은 추석 연휴 전 사법개혁 입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이에 대법원은 사법부의 참여 없이 추진 중인 입법 절차에 우려를 표했다. 천 처장은 “사법부 공식 참여의 기회 없이 입법 추진이 진행되고 있다”며 “이례적인 절차 진행이 계속되고 있는 비상 상황”이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번 회의를 통해 전체 법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한 뒤 공식 입장을 개진할 예정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회의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이날 열린 법원의날 기념식에서 사법개혁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조 대법원장은 기념사에서 “국회에 사법부의 의견을 충분히 제시하고 필요한 부분은 합리적인 설명과 소통을 통해 설득해 나감으로써 국민 모두를 위한 올바른 길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특히 “사법부가 헌신적인 사명을 온전히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판의 독립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며 “법관 여러분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오직 헌법을 믿고 당당하고 의연하게 재판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법부가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며 “국민이 사법부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보완하며 국민의 신뢰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대법원이 이전에 사법권 침해와 위헌 소지를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혔던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문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 “위헌이라는데 그게 무슨 위헌이냐”며 우회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민주당의 개혁 추진이 사법권 독립과 재판 공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가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설령 법률이 제정돼 특별재판부가 구성돼도 위헌 논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보수 성향의 변호사 단체인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헌변)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명백한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헌변은 성명서에서 “우리 헌법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아닌 법관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대법원장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며 “국회가 내란 재판부를 만들어 특정 사건 재판을 맡기는 건 헌법에 명백히 위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민주당을 향해선 “국민은 사법부를 국회 아래 두고 민주당 입맛에 맞는 판사들을 골라서 민주당이 원하는 판결을 하라고 표를 준 게 아니다”라며 “헌법을 무시하고 입법·행정·사법 3권을 모두 손아귀에 틀어쥐고 마음대로 하겠다는 건 히틀러의 나치 독재와 다를 바가 없다”고 질타했다.
비영리 변호사단체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도 지난 2일 성명서를 통해 “내란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은 법관 임명 절차에 외부 인사가 개입하도록 해 헌법 질서를 정면으로 위반한다”며 위헌임을 주장했다.
서울대 법대 76학번 동문 21명도 지난 9일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헌법 제104조 3항을 언급하며 “법관의 임명 관여자를 대법관과 대법원장만으로 못 박고 있으므로, 이에 배치되게 정치인과 변호사 등이 추천한 사람을 내란특별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법안은 위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과 변호사 등이 현직 서울중앙지법·서울고등법원의 법관 중에서 특별재판관을 추천하더라도, 외부인이 법원의 전속권한인 사무분담과 사건배당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