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생계 사이…‘겸업 금지’에 갇힌 대학원생 [쿠키청년기자단]

학문과 생계 사이…‘겸업 금지’에 갇힌 대학원생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5-09-14 11:05:28
조단비씨가 4대 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물류창고 일용직을 찾고 있다. 사진=원지현 쿠키청년기자 

#“대학원생이 연구를 해야지 왜 알바를 하니?” 인문사회계열 대학원에 입학한 조단비(24·가명)씨가 교수와의 면담에서 들은 말이다. 조교 자리를 제안하며 건넨 이 말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연구를 제외한 일체의 수익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뒤이어 교수는 조교 업무의 대가로 월 30만원을 제시했다. 조씨가 받던 아르바이트 월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많은 대학원은 대학원생이 ‘연구에만 전념하도록’ 겸업 금지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반면 대학원생들은 “생계 보장이 선행돼야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연구에만 몰두하라지만…현실은 알바 전쟁

조씨가 교수로부터 제안받은 조교 업무비 월 30만원은 최저생계비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최저생계비란 매년 정부가 정하는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올해 최저생계비는 국민의 소득·지출 수준과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해 1인 가구 기준 143만5208원으로 책정됐다. 조씨는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비용만 해도 달에 50만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월세에 공과금, 식비만 합쳐도 조교 업무비를 훌쩍 뛰어넘는다.”고도 말했다.

조씨에겐 조교직 외에 생계를 이어갈 다른 수입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씨가 다니는 대학원에서는 겸업 사실이 적발될 경우 등록금 감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는 규정이 있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충당하면, 매 학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 감면 혜택을 포기해야 한다. 조씨는 “아르바이트하는 걸 교수님께 들키면 안 된다는 말을 동기나 선배에게 자주 들었다.”고 전했다.

대학 측에도 사정은 있다. 학부가 기초 소양을 쌓는 단계라면, 석사 과정부터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이 때문에 대학원은 학문에 충분히 시간을 쏟을 학생을 원한다. 대학원생은 강의 외에도 세미나와 학술대회 참여 등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학생이 가급적 겸업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셈이다.

같은 규정을 시행하는 경남 지역의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원생들이 연구와 학업에만 몰두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겸업 금지 규정을 뒀다.”며 “장학금 예산이 한정돼 있어, 부가적인 수입원이 없는 대학원생에게 우선 혜택을 주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4대 보험 적용자에게 등록금을 감면해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생계 곤란 특별장학금 제도를 확대해 대학원생을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단비씨가 입학하는 대학원의 등록금 지침. 국립창원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4단계 두뇌한국(BK)21 사업 관리 운영 지침 제4장 제11조. 한국연구재단 BK21 홈페이지 캡처 

이런 문제는 조씨만의 일이 아니다. 교육부가 전국 대학원에 재정을 지원하는 BK21 사업은 운영 지침을 통해 수혜 대상을 4대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대학원생으로 제한하고 있다. 매년 1만여명의 사업 참여 대학원생이 이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특히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의 생계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전년 대비 3조2000억원 늘어난 29조6000억원이다. 그러나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약 13억원 줄어든 3590억원에 그쳤다. 전체 연구개발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에 불과하다. 이 예산은 교수와 대학원생에게 지급되는 연구비 지원 사업 재원으로 사용된다.

불안정노동과 대출이라는 이지선다

4대 보험 가입자를 지원에서 제외해도 대학원생들은 겸업할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는 김원우(26·가명)씨는 올해 6월 말부터 4대 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물류센터 일용직을 시작했다.

김씨가 일하는 물류센터는 월 일정 근무 일수 이하로 일하면 4대 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 덕분에 그는 연구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도 장학금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원청의 노동 수요에 따라 모집 인원이 매일 달라져, 출근 일정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어 생활비 마련이 불안정하다.

김씨는 “문과 대학원생은 조교 장학금이나 다른 노동 대가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다.”며 학기 중에도 일용직 노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 밖 노동에 힘을 쏟다 보니 연구 시간과 질 모두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단기·일용 아르바이트 외에 대출로 생계를 버티는 대학원생도 있다. 경남의 한 대학원에서 공공정책을 전공하는 이재민(26·가명)씨는 연구 사업이 거의 없어 지난 학기를 대출로 버텼다. 그는 “대학원생은 또래에 비해 돈을 벌기 힘든 처지”라며 “대출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려면 이공계에 지나치게 쏠린 연구개발 예산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원생노조 김민재 조합원은 “윤석열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했다고 하지만, 인문사회계열 예산은 애초에 거의 없었다시피 했다.”며 “공동체가 유지·발전하는 데 인문사회과학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지현 쿠키청년기자
krchloe1234@naver.com
원지현 쿠키청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