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금융당국이 자본 규제 개선안을 내놨다. 지급여력제도(K-ICS)의 핵심인 시장위험액 산출 방식을 완화하고, 자산·부채 현금흐름 매칭을 지원해 국채 중심 운용에서 벗어나 수익성이 높은 자산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유도하는 것이 골자다.
1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앞으로 보험사가 국민성장펀드 등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타 기업 지분(주식)에 투자할 경우, 적립해야 하는 주식 위험액(현행 비상장주식 위험계수 49%)이 완화된다. 현재 보험사는 주식 투자 시 위험도에 따라 추가 자본(요구자본)을 쌓아야 하는데, 그동안은 정책 프로그램 투자에도 과도하게 높은 위험계수가 일괄 적용돼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앞으로는 위험도가 높은 비상장주식이라도 정부가 보증하거나 지원하는 정책 프로그램을 통한 투자라면 위험을 낮게 평가해 요구자본을 줄여준다. 시장위험액은 요구자본 항목으로, 보험사의 킥스 비율에 직접 반영된다. 이에 따라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본 규제 부담이 완화되면서 장기적·생산적 분야로 자금을 돌릴 여지가 커질 전망이다.
펀드 투자 규제도 완화된다. 지금까지는 펀드 전체를 일괄적으로 고위험으로 간주해 높은 위험계수를 적용했지만, 앞으로는 펀드 내 편입자산을 세분화(편입자산 분해)해 실제 위험도를 정밀하게 산출한다.
특히 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레버리지 펀드의 경우, 현행 제도는 약관상 최대 레버리지 비율을 기준으로 위험액을 계산해 실제보다 과도하게 높은 계수가 적용됐다. 개선안은 이를 실제 운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레버리지 비율로 바꿔 반영한다. 불필요하게 부풀려지던 위험액 산출 구조를 바로잡아 보험사의 펀드 투자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국채 밖 장기 투자 길 터준다…업계 우려 여전
금융당국은 자산·부채 현금흐름 매칭조정 제도 활성화도 추진한다.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의 현금흐름과 향후 지급해야 할 부채의 현금흐름이 비슷할 경우, 자산에서 발생한 추가 수익(스프레드)을 부채 평가에 반영해 부채 규모를 낮춰주는 제도다. 부채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보험사 입장에서는 자본 확충 효과가 발생한다.
현재 제도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실제 적용사례는 없다. 당국은 인프라펀드 등 현금흐름이 일정한 장기자산을 대상으로 매칭조정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국채에만 의존하지 않고도 장기·안정적 자산에 투자할 유인이 생긴다. 특히 인프라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국채보다 수익률을 높이면서도 안정성을 갖춘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매칭조정을 통해 보험사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에 자금을 투입하고, 동시에 스스로의 재무 건전성도 높이는 효과를 낼 것으로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이번 개편은 금융권의 구조 전환 전략과 맞물려 추진되는 만큼, 보험업계의 자산운용 기조 전반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혁신기업 투자는 본질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험사는 고객 자금을 운용하는 특성상 원금 회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고, 손실이 발생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산적 금융은 킥스 비율 관리가 시급한 중소형사들에겐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지만, 대형사들은 감독당국의 기조를 살피며 제한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이날 관련 백브리핑에서 “인프라 투자와 같은 생산적 금융은 초기에는 위험이 따르지만 안정화되면 장기간 꾸준한 현금흐름을 창출할 수 있다”며 “보험사 입장에서는 매우 매력적인 장기 투자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는 본질적으로 보험 리스크뿐 아니라 금리·주가 변동에 따른 시장 리스크, 대출·투자 자산 부실에 따른 신용 리스크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이들 위험이 상호작용하는 구조를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 제도 개선이나 보완책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