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측할 수 없는 이상기후가 올겨울 패션업계의 최대 변수가 되고 있다. 평년보다 빠른 기온 하락으로 소비자들의 겨울 채비가 예년보다 앞당겨졌지만, 겨울철 전체 기온 흐름은 안갯속이다. 급변하는 날씨 탓에 판매 전략과 재고 운영에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요 패션기업들의 4분기 실적이 ‘날씨 운’에 따라 출렁일 전망이다.
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패션업체 대부분의 4분기 실적은 전년 대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8.1% 감소한 166억원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고, 한섬 역시 매출(1조4785억원)과 영업이익(568억원)이 각각 0.45%, 10.56%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삼성물산 패션 부문도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5%, 37.1% 감소한 데 이어 하반기 반등 역시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빠르게 떨어진 기온이 예상 밖 변수로 부상했다. 이달 들어 아침 최저기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는 날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의 겨울 대비 시점이 예년보다 크게 앞당겨졌다. 패션 플랫폼 에이블리에 따르면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9일까지 ‘겨울 상의’ 검색량은 전년 대비 52%, ‘겨울옷’은 15% 증가했다. 대표적인 겨울 아우터인 경량 패딩 검색량은 142%, 거래액은 110% 늘었으며, ‘후드 경량 패딩’은 검색량이 11배(1045%) 폭증했다.
무신사에서는 같은 기간 ‘경량 패딩’ 검색량이 전년보다 약 4.9배(486%) 급증하며 전체 인기 검색어 10위권에 진입했다. 크림 플랫폼 역시 9월 초부터 가벼운 아우터 거래가 꾸준히 증가했고, 9월 중순 이후 본격적인 패딩류 판매가 시작됐다. 업계 관계자는 “간절기를 건너뛰고 바로 방한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10~12월 실적에 조기 수요 효과가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패션업체들은 예년보다 빨라진 수요에 맞춰 제품 전략을 서두르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헤비다운 물량을 줄이는 대신 경량 제품군을 전년 대비 30% 이상 늘렸다. 그 결과 최근 2주간 경량 패딩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46% 증가했다. 코오롱FnC도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의 신제품 ‘솟솟다운’ 물량을 1.3배로 늘렸고, LF가 운영하는 리복 역시 경량 패딩 라인을 강화했다.
브랜드들은 또 변덕스러운 날씨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라인업 다각화와 유통 시스템 효율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한섬 온라인 사업은 연간 거래액이 처음 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2022년 구축한 자동화 물류센터 ‘스마트허브 e비즈’는 연간 1100만 건의 주문을 처리하고 최대 92만 벌의 의류를 보관할 수 있어, 배송 효율을 크게 높였다. 이 덕분에 구매전환율과 재구매율은 각각 20%, 30% 이상 증가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빠른 기온 하락이 조기 수요를 이끌고 있지만, 올겨울 전체 기온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며 “이상기후는 단순히 판매 시점을 앞당기는 수준을 넘어 재고 관리에도 큰 부담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날씨가 변덕스럽게 움직이면 어떤 제품군을 얼마나 생산해야 할지 예측이 어려워지고, 수요 예측이 빗나갈 경우 재고가 남게 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며 “특히 겨울 의류는 부피가 크고 보관·처리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재고 부담이 곧 영업이익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