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는 주요 금융공기업들을 둘러싼 송곳 질의가 이어졌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도약기금’ 실효성 논란, 신용보증기금의 ‘좀비기업’ 연명, 주금공의 전세사기 사각지대 등 굵직한 현안이 거론됐다. 해묵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쟁도 재점화되며 국감장을 달궜다.
“도박빚·투자빚 못 거른다”…‘새도약기금’ 집중포화
이날 국감의 최대 쟁점은 단연 ‘새도약기금’이었다. 113만4000명의 장기 연체자 지원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무위는 현실적 한계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도덕적 해이 유발 가능성과 기금 성패를 좌우할 대부업계 참여 문제, 캠코의 채권 떠넘기기 가능성 등이 집중 거론됐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새도약기금이 개인의 도박 빚이나 투자 빚은 구분하지 못한다”고 포문을 열었다. 김 의원은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에게도 사행성 오락 빚도 탕감받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선별적 가능’이라는 답을 받았지만 거짓말”이라며 “채무자의 개인 신청 없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채권을 일괄 매입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개개인 빚의 성격을 구분해 낼 수 없는 상태”라고 질타했다.
이에 정정훈 캠코 사장은 사실상 한계를 인정했다. 정 사장은 “완벽하게 도박자금, 투자자금을 100%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어 “사업자대출에 한해서는 사업장 코드가 넘어오기 때문에 도박장 개설, 유흥주점 개설 등의 경우 탕감하지 않고 환매할 예정”이라면서도 “사업자의 경우만 그렇고, 개인을 가려내지 못하는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낮은 대부업권 참여에 대한 우려도 쏟아졌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부업체들이 갖고 있는 채권은 어떻게 할 건가. 그들이 (채무조정 프로그램) 협약에 들어올 가능성이 낮다”고 꼬집었다. 현재 새도약기금 매입 규모 중 대부분(6조7000억원)은 대부업계가 보유 중이다. 하지만 기금의 평균 매입가율(5%)이 대부업권의 부실채권 평균 매입가율(29.9%)보다 현저히 낮아, 대부업체가 손해를 감수하고 채권을 매각할 유인이 적다는 지적이다.
정 사장은 “저희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한국대부금융협회는 (새도약기금) 협약에 가입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금융위원회와도 협의해 대부업체도 최대한 많이 가입하도록 독려하고 인센티브도 논의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또한 “캠코가 기존에 처리 못한 장기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정 사장은 “요건에 맞지 않는 보유 자산에는 새도약기금과 동일한 수준 이상으로 자체 채무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1조 4000억원을 차질 없이 정리하겠다”고 답했다.

‘성과 1%’ 장소연 재단 도마…새도약기금, 전철 밟을라
과거 유사 사업의 실패 사례도 거론됐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캠코가 관여한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장소연)’을 거론하며 “성과가 당초 목표의 1%에 불과했다”고 맹폭했다. 이 의원은 “지난 2018년 출범 출범 당시 76만명이 보유한 2조6000억원 규모의 채권 소각을 목표했지만, 실제 지원은 9000명, 소각 채권액은 365억원에 그쳤다”며 “금융사 출연금 1061억원 중 실제 소각에는 11억원만 쓰였는데 금융당국과 캠코 모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이외에도 이 의원은 △장소연 재단이 사무실 운영비로 지난 8년간 100억원 넘게 집행한 점 △캠코가 매년 위탁관리비용 명목으로 재단으로부터 10억원~17억원씩 받은 점도 추궁했다.
정 사장은 “전체 관리 감독 권한이 있는 금융위, 업무를 수탁해서 하는 캠코 모두 미흡하고 소홀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의원은 소연 재단의 성과가 미흡함에도 유사한 ‘새도약기금’을 출범시킨 것을 지적하며, 명확한 성과 평가 기준과 청산 규정 도입 등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 사장은 “정책당국과 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또 불거진 ‘산업은행 부산이전’…국감장서 ‘설왕설래’
이날 국감에서는 해묵은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방도 다시 불거졌다. 본점 이전과 동남투자공서 설립 실효성에 대해 여야가 공방을 주고받은 것이다. 앞서 지난 정부는 산업은행의 필수 조직만 제외하고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하는 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워 부산 이전을 위한 행정절차도 마무리된 바 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에 탄핵되고, 이재명 대통령의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부산을 지역구로 둔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공약이었던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촉구하며 정부·여당을 압박했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은행 이전 대신 동남투자은행을 약속했지만, 얼마 전 국무회의에선 투자공사를 설립하겠다고 한 데 이어, (이젠) 권역별 투자공사를 설립하겠다고 한다”며 “산은 본사를 간절히 원했던 부산시민 입장에선 권역별 투자공사에 만족할 수 없는 만큼 산은 (이전)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동남투자공사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박에 나섰다. 그는 “(산은 이전은) 노조와 오세훈 서울시장도 반대해 지체되고 있다”며 “산은이 부산에 온다고 부산에 집중 투자할 수는 없다. 집중투자를 위해 투자공사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맞춤형 집중투자를 할 수 있는 투자공사야말로 말로 적극적 투자 등 측면에서 더 낫다”고 부연했다.

주금공 “전세사기 취약·태영건설 과도 지원” 지적에 ‘휘청’
한국주택금융공사(주금공)는 ‘전세사기’와 ‘태영건설’ 문제로 비판 받았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은 “주금공 보증서 발급 내역을 보면 약 63%가 전세사기 위험 심사를 아예 하지 않는다”며 “제외된 대출 대부분은 저소득층과 청년이 이용하는 주택도시기금 전세대출”이라고 ‘심사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워크아웃 이슈로 부실이 증명된 태영건설에 주금공이 적극 지원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금공은 시공사 부실 사업장 정상화 특례 보증상품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보증 현황을 보면 지금까지 총 12개 사업장에 총 1조5433억원을 공급했는데, 그 중 태영건설이 공사 중인 7개 사업장에만 무려 1조560억원을 집중 지원했다”며 “이미 워크아웃에 들어간 시공사에 집중 지원이 이뤄진 것은 심각한 리스크 관리 부재”라고 질타했다.
이에 김경환 주금공 사장은 “태영건설이 공사비가 올랐음에도 당초 약정한 금액대로 시공하겠다고 약속해 분양 경쟁력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태영건설의 사업장이 많은 것과 시공사 교체가 원칙인 것도 사실이다”라며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한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신보, ‘좀비기업’에 3.9조 보증…“부실 위험기업 뒷받침”
신용보증기금은 ‘좀비기업’ 연명, 징계 임직원 성과급 문제로 뭇매를 맞았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신보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신보 보증을 10년 이상 이용 중인 장기이용기업은 4485개 중 56.7%가 ‘잠재 부실 위험군’에 속한다. 장기이용기업은 보증이용기간이 10년(혁신형 중소기업 12년) 이상이고 보증이용금액이 업종별 평균 보증이용금액의 2배를 초과하는 기업이다. 이들 장기이용기업 보증 잔액은 3조9065억원에 달한다. 36년간 보증을 받아온 기업도 3곳이나 됐다.
추 의원은 “신보 보증이 일시적 자금난 해소와 성장 지원이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부실 위험기업의 장기존속을 뒷받침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또 “신보는 2020년부터 최근까지 징계 처분으로 정직된 직원 7명에게 보수 7188만원을 지급했고, 성비위와 음주운전 등으로 징계받은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30건, 1억원을 지급했다”면서 “국가공무원법과 기획재정부 지침 위반이 아닌가”고 따졌다. 이에 대해 최원목 신보 이사장은 “정부 지침에 맞게 제도를 운영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