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확대 오찬 겸 정상회담에서 한미 관세 협상 세부안에 극적으로 합의했다. 한국은 연간 200억 달러 한도로 총 20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 7월 30일 큰 틀의 관세협상 타결 이후 세부 조건을 놓고 3개월 넘게 평행선을 달리던 협상이 정상 간 결단으로 급물살을 탄 결과다. 양국은 이번 협상이 외환시장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한미 간 공급망 협력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이날 회담 이후 브리핑을 통해 “대미 금융패키지 3500억 달러 중 현금투자 2000억 달러는 연 200억 달러 상한을 두어 외환시장 부담을 최소화했다”며 “시장 불안이 우려될 경우 납입 시기와 금액을 조정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외화자산 운용수익을 활용할 계획이며, 이자·배당 등 수익이 적지 않아 대부분 충당 가능하다”며 “추가 조달이 필요하더라도 정부보증채 형태로 국제자본시장에서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내 외환시장에 공급이 늘어나는 일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양국은 또한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기업이 주도하는 이 사업은 선박금융을 포함한 장기자금 조달 방식으로 외환시장의 부담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김 실장은 “국내 기업의 투자는 대출 보증을 통해 이뤄지며,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회담 직전까지 관세 협상의 급진전이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진행한 전화 협상에서 입장 차가 여전히 큰 상황이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늦게 회담장에 도착한 것도 비관적인 관측을 더욱 부각시켰다. 김용범 실장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협상 전망이 어두웠지만, 오늘 급진전이 이뤄졌다”고 했다.
하지만 회담이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예정 시간을 넘겨 87분 동안 진행되는 동안 상황은 급변했다. 오랜 기간 실무진 협상이 안 된 부분에 두 정상이 만나 탑다운 방식으로 타결을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또 23차례에 걸친 장관급 협의를 비롯한 지난한 협상이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미 투자 구조는 원리금 보장을 전제로 설계됐다. 한미 양국은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프로젝트’만 투자 대상으로 삼기로 했으며, 원금 회수가 지연될 경우 수익 배분(기본 5대5) 비율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김 실장은 “투자 위험을 줄이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엄브렐라 구조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리금 회수 이후엔 수익 배분률을 어떻게 할지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다. 김 실장은 “20년 내에 원리금을 전액 상환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면 수익 배분 비율도 조정 가능한 것으로 서로 양해했다”며 “우리가 원한 숫자를 명확하게 넣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로 한국산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는 일본 및 EU 수준인 15%로 낮아졌고, 목재·항공기 부품·제네릭 의약품 등 일부 품목은 추가 인하 또는 무관세 혜택을 받게 되었다. 반도체에 대해서도 주요 경쟁국 대만과 동등한 수준의 관세가 보장되었다. 김 실장은 “농산물 분야의 추가 시장 개방은 철저히 방어했다”고 말했다.
양국은 이번 합의가 외환시장 부담을 줄이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며,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실장은 “정부는 후속 절차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이 합의가 향후 양국 경제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회담 후 환영 행사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친구였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당신은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미 그렇다. 그리고 우리가 이걸 같이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이 대통령을 칭찬했다. 이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영광이었다. 고맙다”고 덧붙였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저녁 만찬자리에서 한국의 극진한 대접에 감사를 표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