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출 받으려면 카드부터?…난감한 청년들 

정책대출 받으려면 카드부터?…난감한 청년들 

저금리 ‘디딤돌·버팀목’ 찾는 사회초년생에 ‘실적 상품’ 권유
창구선 “손 많이 가는데 실적은 ‘0점’”…악순환 이어져

기사승인 2025-11-04 06:00:12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 창구를 찾은 시민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사회초년생 김씨(27)는 전세 계약서를 들고 시중은행 여러 곳을 전전한 끝에 청년 버팀목 전세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은행은 “정책대출은 부실 위험만 크고 남는 게 없다”며 난색을 보였고, 두 번째 은행은 “대출은 가능하지만 실적이 안 잡히니 월급통장 거래가 필요하다”고 했다. 가까스로 승인된 세 번째 은행에서는 “이번 달 실적을 채워야 한다”며 “신용카드를 발급받지 않으면 대출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중은행 대출보다 금리가 낮은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대출을 찾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은행 창구에서는 “실적이 안 된다”는 이유로 취급을 꺼리거나, 월급통장·신용카드 개설 등 부가상품을 권유하는 사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출 우호적 지점 찾아”…‘버팀목‘ 받으려 은행 ‘뺑뺑이’

4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고정형(혼합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전날 기준 연 3.68~5.83%로 수준이다. 정부가 무주택자 서민의 주택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운용하는 ‘디딤돌 대출’의 경우 금리가 연 2.85%~4.15%로 시중은행보다 0.78~1.68%포인트(p) 낮다. 전세자금 지원을 위한 버팀목 대출 금리는 연 2.5%~3.5%, 청년 전용 상품의 경우 연 2.2~3.3%가 적용된다. 우대금리를 적용할 경우 시중은행과 정책상품의 금리 차이는 더 확대된다.  

디딤돌·버팀목 등 정책자금대출은 정부가 무주택자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 주택도시기금을 재원으로 운용하는 저금리 정책 대출 상품이다. 디딤돌대출(구입)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 버팀목대출(전세)은 부부합산 연소득 5000만원 이하 무주택자에게 낮은 금리로 주거 자금을 빌려준다.

낮은 금리에 많은 청년들이 정책대출을 찾고 있지만 실제로 정책대출을 취급하는 은행 지점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최근 계약 만료가 다가와 전세 매물을 찾는 김모(26·여)씨는 “버팀목 대출을 해주는 지점이 많지 않아, 정책대출에 우호적이라고 소문난 지점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김 씨는 “대출을 받으려면 신용카드나 월급통장을 개설해야 한다는 후기를 많이 봤다”며 “가입하지 않으면 또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할까봐 권유받으면 개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동산 관련 온라인 카페에서는 “○○은행은 버팀목이 까다롭다”, “○○점은 받아준다더라” 등 ‘정책대출 취급 정보’를 공유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일부 부동산에서는 임차인에게 ‘정책대출이 가능한 지점’을 추천하는 경우도 있는 현실이다.

취업을 계기로 새 보금자리를 찾느라 정책대출을 이용한 20대 김모씨도 대출 과정에서 청약통장 개설 여부를 확인 받고, 신용카드와 월급통장을 새로 개설했다. 은행원의 권유에 응하지 않으면, 부동산 계약이 완료된 상황에서 혹여 대출 승인 과정에서 불이익이 있을까 우려한 탓이다.

"손은 많이 가는데 실적도, 수익도 없어"…은행 부담도

정책대출은 정부가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직접 공급하거나 은행 자금을 우선 이용한 뒤 정부가 시중금리 차를 보전(이차보전) 해준다. 다만 보전 상한선이 낮아 은행 입장에서는 원금만 회수할 뿐 실질적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달 조정대상지역과 투기지역의 디딤돌대출을 전액 은행 자금으로 공급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은행의 부담은 더 커졌다.

정책대출의 특성상 주택 면적에 비해 가격이 낮은 다가구주택 등 위험 물건이 많은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았다. 부실대출이 발생하면 처음 취급한 창구 직원과 결재자까지 책임을 지는 구조라 현장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창구 직원들의 부담이 큰 상황에서, 은행의 성과 구조는 부가상품 권유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정책대출을 취급하는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금대출 업무는 은행원 개인 실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출 상담부터 전산 심사, 임대인과의 소통, 전세대출의 경우 보증보험 처리까지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업무를 수행해도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도 이러한 성과 구조가 ‘부가상품 권유’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정책상품 취급 시 상품 권유는) 은행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광의의 ‘꺾기’라고 볼 수 있다”고 꼬집었다. ‘꺾기’는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고객에게 예·적금 등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관행을 뜻한다.

이어 김 대표는 “은행에서 정책대출 업무를 KPI에 포함해야 한다”면서도 “영업이 인사고과로 직결되는 현 은행 평가체계 아래에선 (이러한 관행이) 완전히 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은 기자
taeeun@kukinews.com
김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