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금지”…‘편의 vs 권리’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나

“새벽배송 금지”…‘편의 vs 권리’ 사회적 논쟁으로 번지나

노조 “택배기사, 과로사 기준 넘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야”
‘0~5시 배송 금지’ 주장에 업계는 시장 경쟁력 위축 우려
야간노동 인체 유해성 증명…“일정 수준 제도장치 마련될 것”

기사승인 2025-11-04 18:09:16
새벽배송에 대한 합리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시내 한 택배 차량 모습. 이다빈 기자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과로 문제를 두고 노동계와 정치권, 산업계의 논쟁이 뜨겁다.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심야시간(0~5시) 배송 제한’을 제안하며 노동권 보호를 요구하고 나서자, 업계는 물류 경쟁력 약화와 시장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 인체에 유해한 야간노동의 위험이 증명되고 있는 가운데 새벽배송 시대 과도기 속에서 합리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택배노조는 최근 “새벽배송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 기준을 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며 “노조의 제안은 이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시간대인 0시부터 5시까지의 배송 업무를 제한해 택배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수면 시간과 건강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또 아침 일찍 수령이 필요한 긴급 품목의 경우 사전 품목 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배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선범 전국택배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야간노동에는 실제로 건강상 위험이 존재하며 특히 노동 강도가 높은 현장에서 사망사고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노동자의 자유의지’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은 사실상 방치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조의 입장이 다소 고육지책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목표는 심야노동으로 인한 과로사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데 있다”며 “쿠팡뿐 아니라 업계 전반에서 심야노동의 위험도를 낮추는 제도적 틀이 마련된다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벽배송 금지 논의는 노동계의 요구를 넘어 정치권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정의당 장혜영 전 의원은 지난 3일 공개 토론에서 이 문제를 두고 맞붙었다. 한 전 대표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 반면, 장 전 의원은 “그 자유가 죽음을 각오한 일터 선택까지 포함돼선 안 된다”고 반박했다.

유통업계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쿠팡을 비롯해 컬리, SSG닷컴 등 신선식품 중심의 이커머스 업체들은 새벽배송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고 있어 전면 금지 시 물류 확장과 시장 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들도 불편을 걱정하고 있다.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와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새벽배송 서비스가 중단되거나 축소될 경우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4.1%(‘매우 불편할 것’ 19.9%, ‘다소 불편할 것’ 44.2%)에 달했다.

쿠팡은 이미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과로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는 입장이다. 쿠팡 측은 “타 택배사가 최근 추가 인력 투입 없이 주 7일 배송을 도입한 것과는 달리 쿠팡 CLS는 업계 최초로 백업기사 시스템을 도입해 고객들에게 ‘7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배송기사는 ‘주 5일 이하 업무’가 가능한 운영 체계”라며 “CLS와 위탁 계약을 맺은 전문 배송업체 소속 택배기사들은 현재에도 30~40% 가량이 주5일 이하로 배송하고 있어 업무 부담이 상당 부분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노조의 전면 금지 주장이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야간노동의 건강상 위험이 분명히 드러난 만큼 제도적 보완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일정 수준의 제재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일·익일배송이 일상화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노동자의 권리 보호보다 새벽배송의 편의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라면서도 “다만 새벽 근무의 건강상 해로움이 명확히 드러난 만큼 ‘본인이 원해서 일한다’는 이유로 이를 무한정 용인할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결국 일정 수준의 제도적 보호 장치 마련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현장 기사들이 ‘자발적으로 일한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동권 침해 여부의 핵심 쟁점은 아니다”라며 “왜 기사들이 심야 시간까지 자발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는지를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심야배송의 필요성은 인정하되 물량은 점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며 “필수적이지 않은 배송은 축소하고, 심야배송 수수료를 현실화해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함께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