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탁.” 흰지팡이 끝이 바닥을 두드렸다.
시각장애 대학생 송혁(24)씨가 학과 교학팀을 찾은 건 지난 9월25일. 건물 복도 바닥엔 깨끗한 흰색 타일뿐,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점자블록은 없었다. 혼자서는 교학팀의 위치를 찾기 어려웠던 송혁씨는 지나가던 학우에게 도움을 요청해 7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각장애인인 제가 학교 공간을 찾아가는 건, 미로 찾기랑 똑같아요.” 송혁씨는 말했다.
한계를 넘어, 대학 문을 두드리다
송혁씨는 선천성 녹내장을 가지고 태어났다. 녹내장은 눈의 압력을 조절하는 액체(방수)가 과도하게 생성되거나 막히면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이로 인해 시야가 점차 좁아지며, 방치할 경우 실명에 이를 수 있다.
송혁씨는 고등학교 입학 전 갑자기 글씨를 보기 힘들 정도로 시력이 악화했고, 결국 맹학교에 입학했다. 안마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입학했지만, 공부를 이어가며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에 입학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송영인(22)씨도 선천성 녹내장을 앓고 있다. 중학생 때 시력이 급격히 떨어져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어졌고, 맹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안마사보다 대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산 넘어 산…시각장애 학생들의 험난한 대학 생활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두 사람의 앞길엔 또 다른 벽이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수강신청이었다. 두 사람이 다니는 대학은 2004년부터 장애학생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장애학생 우선 수강신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매 학기 수강신청 첫날, 장애학생이 일반 학생보다 하루 먼저 과목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제도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송혁씨는 “장애학생을 위한 우선 수강신청 제도가 있긴 하지만, 외국인 학생과 함께 신청을 해요. 정원도 2~5명으로 제한돼 손 사용이 어려운 시각장애 학생은 절대적으로 불리하죠.”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 직접 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수업에 필요한 교재를 구하는 일도 큰 난관이다. 비장애인 학생들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손쉽게 교재를 구입하지만, 시각장애 학생들은 매 학기 점자로 된 대체 자료를 기다려야 한다.
송영인씨는 “저희가 점자 도서관이나 복지관에 교재를 의뢰해요. 그곳에서 책을 한 장씩 스캔하거나 타이핑해서 텍스트 파일로 만든 뒤, 다시 점자로 변환해요. 마지막으로 시각장애인 교정사가 오류를 검수해야 완성돼요.”라며 복잡한 과정을 설명했다.
교재를 의뢰해도 완성까지는 한두 달이 걸린다. 학기의 절반 가까이 교재 없이 버텨야 하는 셈이다. 대학에서 대필 도우미(수업 내용을 대신 필기해 주는 지원 인력) 제도를 운영하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다. 송영인씨는 “간혹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필도우미가 중요한 내용을 빠뜨릴 때도 있다”며 “세세한 수업 내용을 이해하려면 교재가 반드시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어렵게 수업을 따라가도 시험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험시간 연장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교육기관이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시각장애 학생은 시험지를 한눈에 볼 수 없어 점자나 스크린리더(화면의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프로그램)를 이용해 문제를 순차적으로 풀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송혁씨가 다니는 대학에는 이를 명시한 학칙이 없다. 시험시간 연장은 교수의 재량에 달려 있다. 송혁씨는 “전공 수업 교수님께 시험시간을 더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런데 교수님은 그런 규정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시험지를 제출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송혁씨는 전공 학과장에게 시험시간 연장 거부 문제를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이 장애학생에 대한 편의 제공 의무를 지키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 보니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언제든 학습권 침해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대학 생활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창구도 마땅치 않았다. 장애학생이 학업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곳은 ‘장애학생지원센터’다. 이곳은 장애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제도적 지원을 제공해야 할 대학의 공식 기구다. 그러나 송혁씨와 송영인씨는 이 센터가 전문성과 연속성이 부족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고 했다.
송영인씨는 “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이 너무 자주 바뀌어요. 제가 2023년부터 대학에 다녔는데 벌써 네 번째 담당자예요. 그래서 학기마다 제 장애 상황을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현행 ‘장애인 특수교육법’은 장애학생이 10명 이상인 대학에 장애학생지원센터와 전담 직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부 운영 기준이 없어 대부분의 대학은 최소 인력만 배치하거나, 센터 직원이 다른 업무를 겸한다.
2025년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장애학생지원체제 운영 현황’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장애학생 지원 인력 중 77.2%가 겸직 인력이다. 전담 인력은 22.8%에 그쳤다. 실제로 송혁씨와 송영인씨가 다니는 대학에도 46명의 장애학생이 있지만, 전담 직원은 1명, 겸직 직원은 2명뿐이다.
스스로 권리 찾기 나선 시각장애 대학생들
결국 송혁씨와 송영인씨는 학습권 보장을 요구하며 직접 행동에 나섰다. 지난 8월8일, 두 사람은 국정기획위원회에 ‘시각장애 학생의 고등교육 접근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제안’ 정책제안서를 전달했다.
두 사람은 입시부터 학업, 진로에 이르기까지 겪어온 차별과 장벽을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했다. 특히 대학이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점검하거나 미이행 시 제재하는 장치가 없어 대학의 책임이 사실상 방치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실시하는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조사’ 결과를 대학 평가에 반영해 대학의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사는 2008년 제정된 ‘장애인 특수교육법’에 따라 3년마다 시행돼 온 제도로, 대학의 장애학생 지원 실태를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2023년부터는 기존의 ‘실태평가’가 ‘실태조사’로 바뀌면서, 대학별 점수나 등급이 공개되지 않게 됐다.
송혁씨와 송영인씨는 이러한 변화로 대학의 책임성이 약화했다며, 다시 평가 체계를 복원하고 장애학생 지원 실태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사람은 교수 대상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 형식적인 온라인 수강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장애 유형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방식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인력 전문화와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전공별 취업 멘토링 등 실질적인 진로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도 요구했다.
이들은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이 더 이상 선언적 구호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인 평가와 지원 시스템을 통해 온전한 권리로 보장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