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보다 성장” 페이커가 세상에 던진 질문 [취재진담]

“승패보다 성장” 페이커가 세상에 던진 질문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11-14 16:46:03
김영건 기자

리그 오브 레전드(LoL)의 살아 있는 전설인 ‘페이커’ 이상혁이 또 한 번 손을 들어올렸다. T1을 이끌고 통산 6번째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차지하며, 사상 최초 3연패 금자탑을 세웠다. 한 팀, 한 선수의 시대가 10년 넘게 이어진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타 종목을 봐도 몇 없다.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오타니 쇼헤이, 르브론 제임스, 마이클 조던 등과 나란히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짧은 수명이 일반적인 e스포츠에서 이상혁의 여정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되고 있다.

2013년 데뷔 이후 T1의 선수, 유니폼, 로고, 명칭 등 수많은 게 바뀌었지만, 중심에는 늘 이상혁이 있었다. 세대교체가 빠른 e스포츠에서 12년째 현역으로 세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는 선수는 이상혁 말고 없다. 그는 수많은 팀원 교체 속에서도 한결같이 팀의 중심을 지켜왔다. 

데뷔 12년 차인 이상혁은 누구보다 많은 우승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새로운 도전을 이야기한다. 최정상에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이 그를 ‘위대한 선수’로 만든다. 이상혁의 놀라운 커리어는 단순한 ‘성과’의 영역을 넘어선다. 수많은 기록과 트로피보다 더 대단한 건 여전히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기 부여’다. 수많은 동료, 후배들이 이상혁을 우러러보지만 정작 그는 여전히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경기 전후 인터뷰마다 드러나는 겸손함과 자기 관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이상혁의 승부욕은 깊이 있는 성찰로 발전했다. 그는 지면 탈락하고 마는 인빅터스 게이밍(IG)과의 멸망전을 앞두고도 기자에게 “전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경기가 하나 더 생겨 긍정적”이라며 힘겨운 과정 자체를 반겼다. KT 롤스터와 가진 결승전에선 1-2로 몰린 4세트 중 환하게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상혁은 “3세트를 내준 뒤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경기를 즐기려 했다”고 했다. 결과보다 과정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배우겠다는 태도다.

‘페이커’ 이상혁. 라이엇 게임즈 제공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성장을 꾸준히 확인하려는 자세는 사실 과거완 다른 모습이다. 이상혁도 한 때 결과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8년 전 롤드컵 결승에서 패한 직후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때의 ‘소년’ 이상혁은 이제 경기를 즐기는 ‘어른’이 됐다. 이번 우승 뒤 그는 “승패를 떠나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과거의 아픔은 없다.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강조했다. 좌절을 발판 삼아 성장의 원동력으로 바꾼 이상혁에게 패배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닌 값진 자산이다.

이상혁은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열정을 오래 유지하고, 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져가려고 노력 중”이라는 말은 그의 선수 생활 원칙이다. 세계 최고가 된 이후에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언급하는 태도, 그리고 매 시즌 초심으로 돌아가는 루틴은 그가 얼마나 프로다운지 보여준다.

결과로 모든 것이 평가받는 시대다. 수능 점수, 입시, 취업, 실적 등 눈에 보이는 결과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사회에서 이상혁은 남들과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성장했는가.” 이상혁의 커리어는 이 간단한 질문을 증명하는 여정이었다. 이 메시지는 게임을 넘어 세대 전체에 닿는다. 결과보다 과정의 의미를, 승리보다 성장의 가치를 말하는 그의 여정은 그래서 더욱 빛난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김영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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