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주식시장에서 잊혔던 바이오주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며 동반 상승세다. 특히 대규모 기술 이전 소식을 전한 에이비엘바이오를 중심으로 매수세가 유입되고 있다. 사흘 연속 급등하며 주가가 두 배 가량 뛰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으로 기술력이 입증됨에 따라 추가 계약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단기간 주가가 급등함에 따라 추격 매수에는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5일 한국거래소(KRX)에 따르면 에이비엘바이오는 전일까지 사흘 연속 급등하며 17만4200원에 한 주의 거래를 마쳤다.
3일 연속 급등…10만→17만원대 주가 점프
이달 초 10만원을 중심으로 등락을 오가던 에이비엘바이오 주가는 지난 12일 상한가로 치솟았다. 이후 이틀 더 급등세를 보이며 장중 최고가(19만5500원)와 장마감 기준 최고가(17만4200원)를 갈아치웠다.
기관이 순매수에 나선 것이 눈에 띈다. 기관은 이달 들어 에이비엘바이오를 1023억원 순매수했다. 외국인은 같은 기간 233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주가가 급등한 지난 12일과 13일 외국인은 대규모 순매수에 나섰지만 전일 차익 실현에 나선 모습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16년 설립된 바이오텍 기업이다. 기반 기술인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Grabody)’를 바탕으로 다양한 약물 파이프라인을 연구·개발하고 있다. 파킨슨병 치료제인 ‘ABL301’이 그랩바디B(GrabodyB, BBB셔틀)의 대표 파이프라인이다.
BBB셔틀은 혈액과 뇌를 분리하는 ‘뇌혈관장벽(Blood-Brain Barrier, BBB)’을 통과해 약물을 뇌 속으로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이다. 뇌혈관장벽은 외부 물질로부터 뇌를 보호하지만, 이 때문에 약물이 뇌에 도달하기 어려워 치료에 큰 제약이 된다. BBB셔틀은 이 장벽 속 특정 수용체를 이용해 약물을 능동적으로 ‘셔틀’처럼 운반한다.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과 뇌종양 같은 난치성 질환 치료에 혁신적인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약물이 뇌까지 충분히 도달해 근본적 치료가 가능하도록 하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세대 BBB셔틀 개발사로, 딜 이력이 있는 셔틀 개발사 8개 중 임상 데이터와 누적 기술수출 규모를 확보하고 있다.
세계 1위 빅파마와 3.8조 규모 플랫폼 딜 체결
에이비엘바이오의 주가 급등은 대규모 기술 이전 소식 덕분이다. 지난 12일 에이비엘바이오는 빅파마 일라이 릴리(Eli Lilly)와 총 3조8000억원 규모의 그랩바디B(BBB셔틀) 플랫폼 기술이전 및 공동연구개발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총 기술이전 금액은 3조8000억원(26억달러)이다. 이 중 계약금은 585억2800만원(4000만달러)이며 기타 마일스톤으로 3조7487억원(25억6200만달러)를 임상, 허가, 상업화 등 성공에 따라 단계적으로 받을 예정이다. 또한 순매출액에 따라 합의한 비율로 로열티도 받는다.
회사 측은 “그랩바디를 릴리에게 제공하고 초기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릴리는 후속 연구개발, 생산 및 상업화 등에 대한 책임 및 권한을 단독 보유한다”고 밝혔다. 이어 “본 계약은 미국의 반독점개선법(Hart-Scott-Rodino Antitrust Improvements Act) 등의 행정절차가 만족되면 효력이 발효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계약으로 에이비엘바이오가 당장 손에 쥐게 되는건 3조8000억원 중 계약금인 585억원이다. 나머지는 임상과 허가, 상업화를 성공해야 받을 수 있다. 계약금은 효력 발생일로부터 10영업일 이내에 받는다. 지난해 매출액은 334억원으로 이번 계약금은 지난해 매출액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 2022년 사노피(1조2000억 원), 올해 4월 GKL(4조1000억 원)에 이어 세 번째 계약 체결이다. 이로써 그랩바디B 관련 기술 이전 누적 규모는 9조2000억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334억원, 영업적자 59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23년도엔 매출액 655억원, 영업적자 26억원이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바이오주임에도 불구하고 현금성 자산이 풍부하다. 올 3분기 분기보고서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약 1171억5800만 원이다. 부채비율은 29%로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아울러 에이비엘바이오는 전일 일라이 릴리를 대상으로 220억원(1500만달러) 규모의 3자배정 유상증자를 한다고 공시했다. 일라이 릴리가 지분 투자를 하는 셈이다. 발행되는 신주의 수는 17만5079주이며 신주 발행가는 12만5900원이다. 발행되는 신주는 1년간 보호예수에 묶인다.
증시 전문가 “기술력 검증 받아…추가 계약 가능성 ↑”
증시 전문가들은 이번 계약으로 기술력을 다시 입증 받았으며 앞으로 추가적인 계약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글로벌 동종 업체 대비 저평가돼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의 이번 계약 상대인 릴리는 글로벌 1위 빅파마로 알츠하이머 치료제 ‘키순라’를 상용화한 대표적인 뇌 질환 개발사다. 업계에선 에이비엘바이오의 플랫폼이 릴리의 뇌 질환 개발 전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릴리의 키순라는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과 관련된 단백질 덩어리인 ‘아밀로이드’를 빠르게 제거하지만 관련 부작용 위험이 높다는 점이 시장 침투 가속화에 부담이 되고 있다. 후발 주자인 로슈가 아밀로이드 베타 타깃의 항체를 BBB투과 플랫폼에 접목시킨 ‘트로티네맙’의 뇌 내 투과율은 8배 높게 나타났다.
엄민용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릴리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 치료제 도나네맙&렘터네터크는 뇌투과 셔틀이 없어 로슈의 트로티네맙 대비 높은 부작용 등이 한계”라면서 “특히 도나네맙은 동종 약물 중 가장 높은 부작용 발생으로 에이비엘바이오의 그랩바디B 뇌투과 셔틀 도입의 핵심 이유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엄 연구원은 “동종 업계에 속한 드날리는 과거 사노피, 바이오젠, 다케다와 총 3건, 5조2000억원 규모의 뇌투과 셔틀 기술 이전(L/O)을 체결하고 시가총액 15조원까지 상승했다”면서 “에이비엘바이오의 뇌투과 셔틀 관련 계약은 내년에도 추가로 이어질 예정으로 과거 드날리 시총 대비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정희령 교보증권 연구원은 “내년 ‘ABL301’의 임상 2상 진입이 예상되며 2상 중간 데이터 공개 후 유효성 입증 시 플랫폼 가치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추가 플랫폼 딜 체결 가능성과 ABL001 담도암 2차 치료제 최종 데이터 발표 및 가속 승인 허가 신청 등의 모멘텀이 남아 있다”고 분석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BBB 투과 기술을 보유해 항체 외에도 리보핵산(RNA) 영역까지 치료 방식(모달리티)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기술 신뢰도가 상향됨에 따라 기술 이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판단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단기간 주가가 급등한 만큼 추격 매수는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계약 이후 증권사들이 내놓은 목표주가가 18만~19만원 선인데 이미 주가가 그만큼 올랐다”면서 “추가 계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긴 했으나 단기간 빠르게 오른 만큼 차익 실현 매물이 언제 나올지 몰라 추격 매수엔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