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이 떨어진 만성콩팥병 환자에게 대상포진은 단순 피부 질환을 넘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감염병이다. 최근에는 만성콩팥병 환자가 고령화되고,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기저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아 면역 기능이 더 떨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상포진 감염이 만성콩팥병 환자의 입원 중 사망 위험을 2배가량 높이는만큼 이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범순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대한신장학회 차기 이사장)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성콩팥병 환자는 원인 질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신장기능 저하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서 대상포진 감염 위험성이 증가하게 된다”며 “최근에는 고령화로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상포진은 신체 노화나 질병 등으로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기면 잠복해 있던 수두 대상포진 바이러스(VZV)가 재활성화되면서 발생한다. 발병 후 심한 통증과 함께 신경통, 시력 상실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만성콩팥병 환자는 T세포 및 B세포 기능 저하 등의 면역 반응으로 대상포진 감염 위험이 높다. 입원 중 사망 위험은 1.88배, 관상동맥질환 위험은 44% 높이며, 말기신부전 위험도 증가시킬 수 있다.
최 교수는 “신장이식 환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하며, 사구체신염이나 루푸스신염 환자 역시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 치료를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높다”며 “면역억제제를 사용하는 신장질환자의 경우 대상포진이 일반인보다 발생 위험 높거나 더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하지만 만성콩팥병 환자는 대상포진 치료가 제한된다. 치료제인 항바이러스제(아시클로비어)는 주로 신장으로 배출되는데, 만성콩팥병 환자는 아시클로비어를 소변을 통해 제거하는 기능이 저하돼 약물독성에 취약하다. 아시클로비어는 약물 대사물질이 신장 내 침착을 일으켜 급성신부전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신기능이 저하된 환자에게 더 치명적이다. 이 때문에 만성콩팥병 환자는 백신 접종으로 대상포진 감염을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최 교수는 “대상포진 치료에 쓰는 진통제나 항바이러스제 등은 신독성이 있기 때문에 병의 진행을 촉진할 수 있으며, 이는 신장 투석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며 “따라서 대상포진 예방은 신장질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고, 말기신부전 시기를 늦출 수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상포진 백신은 약독화 생바이러스 백신(생백신)과 유전자 재조합 백신(사백신)으로 나뉘는데, 면역저하자와 신장질환자는 재조합 백신 접종이 권고된다. 장기이식으로 면역억제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대상포진 생백신을 투여할 경우 질환이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조합 백신은 신장이식 환자도 접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상포진 예방 효과도 크다. 5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ZOE-50)에 따르면, 재조합 백신의 예방 효과는 97%에 달했다. 기저질환자도 90% 안팎의 효과를 보였다.
이에 세계신장학회(KDIGO)는 사구체질환, 신증후군, 만성콩팥병 환자에게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권고하고 있다. 영국에선 지난 9월부터 장기이식 환자나 자가면역질환 치료 중인 신장질환자 등 고위험군은 주치의를 통해 무료로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
국내에선 대상포진 예방접종 지원 여부가 지역마다 다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68곳(73.4%)이 예방접종 지원 사업을 운영 중이다. 나머지 61곳(26.6%)은 예산 등의 이유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지원 규모도 제각각으로, 같은 예방접종임에도 지자체마다 최대 14배의 차이가 났다.
최 교수는 “재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환자에게 접종할 수는 없을 테고, 만성콩팥병 환자 안에서도 꼭 필요한 환자를 대상으로 지원을 시작해 인식을 넓혀가며 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이 올바를 것”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