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퇴직의 시대, 50대는 정말 준비되어 있는가 [WORK & PEOPLE]

희망퇴직의 시대, 50대는 정말 준비되어 있는가 [WORK & PEOPLE]

기사승인 2025-11-26 14:48:00
한운옥 박사·한국미래정책연구소 소장

50대 희망퇴직, 새로운 유행처럼 번지다

100세 시대라지만, 한국 기업의 시계는 여전히 50대에서 멈춰 있는 듯하다. 최근 LG전자가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전사 희망퇴직을 시행했다는 소식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LG만의 문제는 아니다. 삼성전자, KT, 포스코, 금융권까지 다양한 기업에서 중·고연차 직원에게 구조조정. 전직 권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인사정책을 넘어 ‘중년 대량 퇴직 시대의 시작’이라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기업은 비용 절감과 조직 재편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인생 후반전을 앞둔 50대를 일찌감치 ‘정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특히 50대는 이제 은퇴가 아니라 또 다른 40~50년의 노동을 준비해야 하는 세대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정부는 ‘신중년’을 키우고, 기업은 ‘조기 퇴장’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점은 정부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50세에서 65세를 ‘신중년’으로 규정하며 재취업과 전직, 창업을 돕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기업이 인력을 내보내는 만큼 사회는 그 부담을 떠안게 되고, 결국 개인은 혼란과 불안 속에서 생애 후반부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순환보직 중심의 인사 체계로 인해 전문성을 충분히 쌓지 못한 채 은퇴를 맞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고, 그 질문은 생각보다 무겁고 현실적이다.

50대의 불안은 능력 부족이 아니라 ‘준비 부족의 구조적 결과’

50대가 느끼는 불안은 단순히 나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동안 ‘다음 단계’를 준비할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기업은 현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집중하도록 요구해 왔지만, 은퇴 이후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탐색하고 훈련할 시간은 허락하지 않았다. 기술은 빨라졌고 직무는 바뀌었지만, 개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조직을 지탱해 왔다. 그래서 퇴직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지?”라는 질문은 더 절박해진다.

희망 퇴직금보다 중요한 것은 “전환 준비”

기업이 희망 퇴직금을 제공했다고 해서 책임을 다한 것은 아니다. 이는 퇴직의 충격을 완화하는 비용일 뿐, 새로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은 되지 못한다. 특히 중소기업에서는 이런 제도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 기업은 단순한 퇴직 절차가 아니라 전환을 돕는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디지털 역량 강화, 실질적인 재취업 교육, 내부 멘토링이나 자문 역할과 같은 경험 기반 직무 재설계, 그리고 40대 후반부터 은퇴 이후 경력을 함께 설계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50대 인력은 비용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자산을 가진 세대이며, 조직이 이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의 차이가 된다.

개인의 역할: 경력의 재해석이 필요한 시대

물론 개인에게도 준비는 필요하다. 자신의 경력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며, 앞으로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조직이 기반을 마련하고, 사회가 이를 뒷받침할 때 개인의 준비는 비로소 현실적인 힘을 갖는다.

100세 시대의 한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기업은 50대를 비용으로만 보는 오래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험은 기술 못지않은 경쟁력이고, 세대의 다양성은 조직의 성장을 견인하는 자산이다. 정부의 신중년 정책과 기업의 인사 전략이 조화를 이룰 때, 그리고 50대를 사회의 동반자로 바라볼 때, 우리의 미래는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해질 것이다.

글·한운옥 박사
한국미래정책연구소 소장
경기대학교 초빙교수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H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