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강국 제치고 동남아로…K-백화점의 선택, 왜 달라졌나

전통 강국 제치고 동남아로…K-백화점의 선택, 왜 달라졌나

내수 경기 부진, 패션 럭셔리 소비 둔화…해외로 눈 돌리는 백화점
“동남아 등 전략적 입지 선점 중요…체험형 K-컬처로 차별화해야”
롯데百 '롯데몰 하노이' 흥행…신세계‧현대도 K-콘텐츠 연계해 확대

기사승인 2025-11-24 06:00:09 업데이트 2025-11-24 07:15:32
베트남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에서 연 팝업 행사에 현지 소비자들이 방문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제공

국내 백화점들이 잇따라 동남아·동북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명품·패션 소비 둔화와 온라인 비중 확대로 내수 성장 한계가 뚜렷해진 상황에서, 해외 진출 자체가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면서다. 이런 흐름에서 업체들의 행선지가 동남아·동북아에 집중돼 배경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24일 산업통상자원의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온라인 주요 유통업체 10개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15.8% 성장한 반면,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소비심리 위축과 온라인 구매 대체 영향 등으로 0.5% 증가에 그쳤다. 9월 들어 백화점은 명절 선물 수요에 따른 식품군 매출 증가와 주얼리 등 고가품 판매 호조를 타고 0.9% 증가했지만, 같은 달 온라인 업체 10개사 매출 증가율(16.5%)과 비교하면 격차가 확연하다. 오프라인 13개사의 매출은 오히려 1.0% 감소했다. 

백화점 성장세가 둔화한 핵심 요인은 마진 비중이 높은 패션·뷰티 소비의 수요 약화다. 실제로 올해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83만6000원으로 전년 동분기 대비 0.8% 증가했지만, 의류·신발 부문 지출은 4.0% 감소했다. 해당 항목 지출액은 14만5000원으로 1분기(-4.3%)에 이어 두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시장조사기관 IMARC의 지난 7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럭셔리(명품) 패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48억 달러로 추산되며, 2025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2.5%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같은 기간 글로벌 명품 시장 예상 성장률(3.76%)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본업’ 성장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백화점 기업들은 포화 상태의 국내 시장을 벗어나 해외에서 새로운 수요층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K-백화점, ‘럭셔리 소비’ 성장성 높은 동남아로 눈 돌린다

백화점 업계의 해외 진출 방향이 동남아·동북아에 집중되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경제 성장률 둔화와 달라진 소비 패턴, 온라인 비중 확대 등으로 전통적 백화점 강국이었던 선진국 시장은 성장성이 크게 낮아진 반면, 동남아 시장은 소비층 확대와 K-콘텐츠 영향력 확대가 맞물리며 새로운 기회가 포착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BIS 월드에 따르면, 미국 백화점 성장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백화점 업계 매출은 올해 말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2.7% 수준으로 둔화되며 약 1874억달러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IBIS 월드는 고금리 기조와 온라인 유통 확대, 소비 패턴 변화 등이 전통 백화점의 성장세를 제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백화점 산업 역시 가계 소득 약화와 높은 인플레이션, 변화하는 소비 습관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구조적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 백화점협회도 지난 7월 일본 백화점 매출이 동일 매장 기준 전년 대비 6.2% 감소하며 6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반면 동남아 시장은 프리미엄 소비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조사기관 IMARC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명품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107억달러에 도달했으며, 2025년부터 2033년까지 연평균 4.38% 성장해 158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가처분소득 증가와 급격한 도시화,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럭셔리 소비 수요 확대가 시장 성장을 가속화하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국내 백화점 해외 진출에 초기 투자 부담을 최소화한 경량화된 점포 방식으로 성장성이 있는 곳의 전략적 입지를 노리는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 부동산 확보부터 인허가, 운영 모델, 현지 규제까지 복합적인 진입 장벽이 높은 백화점 개발 특성상 팝업스토어 또는 상설 매장 확대를 통해 인지도를 먼저 높이는 전략이 해외 진출의 중요한 공식이라고 조언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 스탠다드)처럼 해외 소비자에게 통하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K-콘텐츠 기반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 체험형 소비, 경험형 매장 중심의 K-스토어 모델을 구축해야 국내 백화점 브랜드가 현지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영국, 일본 등 기존 선진 시장은 이미 국내와 유사하게 백화점 실적 흐름이 둔화되고 경쟁도 더욱 치열한 상황”이라며 “K-콘텐츠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동남아 등 지역을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외 진출 해법”이라고 덧붙였다.

신세계백화점 태국 방콕 센트럴월드 팝업 전경. 신세계백화점 제공

롯데‧신세계‧현대 3사 ‘해외 출격’ 전략 제각각

국내 백화점 3사는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동북아 지역을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동남아와 일본 등지에서 신규 점포 개장과 소비자 접점 확대 행사가 잇따르며 각 사의 해외 전략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 백화점 3사는 저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성장성이 높은 동남아·동북아 지역을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다. 복합몰·팝업·정규 매장 등 채널은 서로 다르지만, 현지에서 K-콘텐츠·F&B·라이프스타일을 결합한 전략을 펼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롯데백화점은 프리미엄 소비가 확대되고 있는 베트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2023년 9월 개점한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는 개점 첫해인 지난해 누적 매출 3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5000억원을 넘기며 대표적인 해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롯데백화점은 해당 점포의 누적 매출이 2026년 말 1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3분기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영업이익은 2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7억원 증가하며 분기 기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추가 새로운 복합몰 개발 계획은 없지만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성공을 토대로 해외 사업을 중장기 성장 축으로 육성해 나갈 것”이라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를 운영하는 롯데프라퍼티스 싱가포르 법인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다만 이자비용 등의 영향으로 3분기 순손실을 기록했으나 손실 폭은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외식 문화가 발달한 베트남 현지 특성을 반영해 다양한 F&B 브랜드를 입점시키며 ‘프리미엄 미식 성지’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개점 초기 52개였던 전체 매장 수도 현재 62개로 확대됐으며, 이 중 프리미엄 수요를 노린 상권 최초 입점 브랜드 비중은 30%에 달한다.

신세계백화점은 K-콘텐츠와 K-패션·뷰티 인지도 상승 흐름을 활용해 글로벌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 7~8월 프랑스 파리 쁘렝땅 백화점에서 진행한 K-뷰티 팝업과 10월 일본 시부야109 K-패션 팝업이 흥행을 거둔 데 이어, 이달에는 태국 방콕 센트럴월드에서 K-뷰티와 함께 글로벌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특히 신세계의 해외 진출 지원 플랫폼 ‘신세계 하이퍼그라운드’를 통해 K-라이프스타일의 현지 확산에 힘을 쏟고 있다. 방콕 팝업스토어는 K-뷰티 브랜드 15개를 한데 모은 체험형 콘텐츠로 구성됐으며 수딩 마스크 팩, 선 크림, 브라이트닝 세럼 류 등이 젊은 태국 여성 소비자 및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글로벌 진출 의지가 있는 브랜드들이 신세계백화점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패션위크, 수주회 등 B2B 채널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동시에 일반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접점도 함께 마련하며 브랜드의 글로벌 노출을 확대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해외 진출을 넘어 협력 브랜드의 성장과 인지도 확장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백화점은 해외 진출에 있어 상설 정규 매장을 중심으로 직접 진출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정하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더현대 글로벌’ 사업을 전개해온 현대백화점은 그간 일본에서 43개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며 입지와 현지 소비자 니즈를 사전 탐색해왔다. 이를 기반으로 올해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에 더현대 글로벌 첫 정규 매장을 열며 본격적인 안착 단계에 진입했다. 팝업스토어 운영을 통해 축적한 현지 유통 환경과 소비 트렌드 분석을 바탕으로 정규 매장을 통해 브랜드 신뢰도를 구축하고 장기적인 수익 모델로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새로운 시장 발굴 차원에서 대만 신광미츠코시 백화점에 팝업스토어도 개설해 K-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오는 2026년 하반기 대만 타이중과 타이난에서도 팝업스토어 운영을 계획하며 동아시아 시장 내 거점 확대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더현대 글로벌의 대만 진출은 다양한 K-브랜드가 해외에서 인정받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이자 한국 백화점이 주도적으로 K-브랜드의 글로벌 유통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더현대 글로벌 사업의 브랜드 소싱 역량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유통 모델을 다변화하고 K-브랜드의 글로벌화를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다빈 기자
dabin132@kukinews.com
이다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