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 결제 산업의 벽 넘을까… 생산적 금융 전환 조건은

카드업, 결제 산업의 벽 넘을까… 생산적 금융 전환 조건은

구조 한계…“조달 수단 다변화·레버리지 완화 필요”
“스테이블코인, 카드사 글로벌 확장의 기회”
카드사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 제언

기사승인 2025-11-21 17:58:22 업데이트 2025-11-21 18:14:50
21일 서울 중구 을지로 은행회관에서 한국신용카드학회가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김미현 기자 

정부가 ‘생산적 금융’ 기조를 강화하면서 카드업계가 실물경제 지원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채 중심의 취약한 조달 구조와 노후한 규제 체계, 데이터 활용 한계 등 산업 전반의 구조적 제약이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열린 ‘KOCAS Conference 2025’에서 전문가들은 카드산업이 결제 기능을 넘어 혁신금융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해 디지털 역량 강화부터 조달 수단 다변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까지 전방위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윤종문 여신금융협회 여신금융연구소 팀장은 신용카드사가 더 많은 ‘빅 서비스’를 수행하는 생산적 금융 플랫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지급 흐름에 맞게 규제를 정비해야 소비자 편의성과 산업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설명이다.

우선 윤 팀장은 앞으로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주도하는 결제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용자가 직접 검색하고 가격을 비교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AI가 개인의 요구에 맞춰 최적의 상품을 찾아주고 결제까지 자동으로 처리하는 구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구매의 주체가 이제 ‘나’가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될 수 있다”며 “결제 단계 또한 PG사를 거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AI가 자체 결제 기능을 통해 거래를 직접 처리하거나, 여러 결제 채널을 비교해 최적 경로를 자동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AI 주도 소비’로의 이동으로, 카드사·PG사 간 경쟁 구도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팀장은 “AI 에이전트 결제가 확산할수록 이를 뒷받침할 법·제도적 재설계가 필수적”이라며 “비자·마스터카드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이미 관련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만큼, 국내 카드업계도 선제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용카드의 정의를 전자적 형태까지 포괄하도록 확대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일정한 신용 한도 내에서 재화·용역·금전·권리를 지급받기 위한 수단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실물 카드뿐 아니라 모바일 카드·토큰 등 전자적 저장방식도 신용카드 개념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거래 범위를 기존 가맹점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급 흐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도록 재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어 “가맹점 중심 구조를 고수하면 카드사는 미래 결제 흐름에 대응할 수 없다”며 비가맹점·B2B·P2P 거래까지 범위 확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카드사의 계좌 기반 서비스 허용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과거 카드사들이 지급결제용 계좌 서비스를 요구한 적이 있었는데, 간편결제 업체와 경쟁하려면 카드사에도 일정 수준의 계좌 기반 결제 기능이 필요하다”며 “지급결제 계좌가 허용되면 송금·지급 서비스로까지 확장돼 카드사가 ‘슈퍼앱’으로 진화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달 구조 한계…“조달 수단 다변화·레버리지 완화 필요”

자금조달 체계 개편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카드업계가 ‘생산적 금융’의 새로운 축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현재의 자금조달 구조로는 역할 확대에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카드사의 수익성 악화와 신용등급 하락 우려로 여전채 투자 수요가 계속 줄고 있다”며 “수요가 줄면 발행 금리도 낮추기 어려워 올해도 여전채 금리는 3%대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올해 카드사의 여전채 의존도는 72%로 높아졌고, 이로인한 조달비용(전년비 8%)도 늘면서 당기순이익이 18%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비용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일부 카드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브릿지론 등 고위험 자산에 손을 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강조하며 자금이 혁신기업으로 향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상황에서, 카드사들이 비생산적 영역인 부동산 PF에 투자하는 것은 정책 기조와 어긋난다. 
 
서 교수는 “조달 환경이 안정돼야 위험투자 의존도를 줄이고 생산적 금융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생긴다”며 자산유동화증권(ABS) 확대, ESG 채권, 해외 신디케이트론 등 조달 수단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자금 기반이 뒷받침돼야 금리 변동기에도 혁신기업 투자와 디지털 전환 관련 IT 투자 등 장기 투자가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와 더불어 싸게 빌린 자금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으로 레버리지 비율(자기자본 대비 자산 비중) 규제 완화도 제안했다. 그는 “카드사의 매출채권·대출채권은 회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위험 가중치를 적용해도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며 “생산적 금융 투자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레버리지 비율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레버리지 한도가 1배 상향될 경우(현행 7배 → 8배), 전업계 카드사 8개 기준으로 약 54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 공급 능력이 생긴다. 서 교수는 “레버리지 규제 완화와 유동성 규제 보완을 통해 확보되는 50조원 이상의 자금 여력을 신산업 투자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카드사 글로벌 확장의 기회…카드사 통합 데이터 플랫폼 구축 제언”
 
새로운 결제 인프라로 거론된 스테이블코인(Stable Coin)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시 기존 지급결제 사업자인 카드사에 사업 참여 기회를 먼저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존 지급결제망을 가장 넓게 갖춘 카드사가 디지털 자산 기반 결제 생태계의 핵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의 카드사는 은행·증권·보험·보증 등 모든 금융권을 통틀어 가장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업권”이라며 “어느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결제 인프라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해외 발급 기반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국내 카드사가 비자(Visa), 마스터카드(Mastercard)와 같은 글로벌 결제 브랜드처럼 국경을 넘는 결제 프로세스와 정산망을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해외 시장 진출, 채권 발행 다변화, 계좌 기능 보완 등 카드업권이 직면한 여러 구조적 문제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 특성상 ‘코인 런(코인 대량 인출)’ 등 잠재적 리스크가 존재하는 만큼 지속적인 기술 개발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위험요인을 관리하려면 카드사들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기술 투자에 나서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카드사가 디지털 시대 지급결제 시장의 중앙 축으로 다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영세가맹점 단말기 보급 사업을 ‘데이터 기반 생산적 금융’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조일형 상명대 교수는 “현재 데이터가 파편화돼 있고 일회성 조회 중심이라 생산적 금융과의 연계성이 다소 낮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통합 결제 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제안했다. 그는 “카드사마다 이해관계가 다른 만큼 제3의 비영리 기관이 플랫폼을 운영해 모든 카드사가 결제 데이터를 공동 제공·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결제 정보의 공공성과 신뢰도가 대폭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통합 데이터를 기반으로 카드사가 각자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여력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출·상권 분석뿐 아니라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신용평가 모델을 고도화하고, 데이터 기반 맞춤형 광고 플랫폼 등 새로운 서비스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시도는 카드사·밴사·플랫폼사가 함께 건전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