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된다. 철강 등 6개 품목에 대해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만큼 비용을 부과한다. 글로벌 탄소규제가 강화되면서 산업계는 가격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일단락됐지만, 세계 무역 질서는 탄소 규제가 새로운 관세로 작용하는 ‘탄소 무역 시대’로 넘어가고 있어 대응 시급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국제 온실가스 산정·보고·검증(MRV)의 글로벌 표준인 ‘온실가스 프로토콜(GHG Protocol)’이 공식 한국어 번역본으로 공개돼 기업들의 공시·수출 대응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전망이다. 국제 기후환경 NGO 푸른아시아는 세계자원연구소(WRI)와 계약을 맺고 GHG프로토콜의 공식 번역 작업을 진행해 공식 번역본을 내놨다.
GHG프로토콜은 온실가스 MRV 분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국제 표준으로, 총 7개 표준과 10개 지침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번역이 완료된 기업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Corporate Accounting and Reporting Standard)을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까지 나머지 표준과 지침 번역도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동안 일부 국내 기업은 국내 기준을 따라 온실가스 MRV를 시행했지만, 글로벌 탄소 장벽은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국제 온실가스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GHG프로토콜은 각종 탄소규제와 지속가능성·ESG 공시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기업이 필요한 전력량 100%를 재생에너지로 사용하자는 ‘RE100(Renewable Energy 100)’측정·보고는 GHG프로토콜을 핵심 표준으로 활용한다. 또 2024년 6월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기후 관련 공시(IFRS S2) 기준 측정과 공시 요구사항에 GHG프로토콜을 활용하도록 명시했다. 영국에 수출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으려면 GHG프로토콜을 활용한 과학기반 감축목표 이니셔티브(SBTi) 승인이 필수적이다. 국내에서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회계 공시에서 GHG프로토콜을 기준으로 삼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진 이유는 기후위기 심화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Scope 3(공급망 전반에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 요구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Scope3 번역본이 나오면 국내 기업들은 국제 요구사항 대응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온실가스 감축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유엔환경계획(UNEP)은 지난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보다 약 2.3% 증가해 역대 최고치인 577억톤(t)이라며 “온난화에 의한 인명, 경제 피해를 줄이려면 보다 큰 폭의 신속한 배출량 감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한국 정부 역시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를 2018년보다 53∼61% 감축으로 잡은 만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을 통한 법적 구속력 강화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에서 해외 탄소규제 대응은 탄소 중립을 위한 경제구조 개혁의 주요 내용으로 제시돼 정부는 탄소배출량 산정·감축을 원스톱 서비스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상임이사는 “탄소 무역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온실가스 표준에 따라 산정․보고하지 않으면 수출, 투자 등을 하는 기업은 죽고 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글로벌 탄소 장벽을 넘기 위한 정부, 기업 등의 실무진 역량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며 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1만 명을 목표로 한 전문가 양성과 중소기업 지원 등에 정부가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판카즈 바티아 WRI의 GHG Protocol 글로벌 디렉터는 “공식 한국어 번역본이 한국 사용자들에게 글로벌 온실가스 회계 및 보고 표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의미 있는 기후 행동을 지원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번역본은 푸른아시아 홈페이지와 GHG프로토콜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푸른아시아는 WRI와 새로운 지침 개발 등에서 파일럿 테스트와 감수 등 협력을 해왔고, GHG프로토콜 권리를 국내에서 보호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