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채널 중심이던 보험 판매 시장은 이미 법인보험대리점(GA)으로 무게추가 기운 지 오래다. 소속 설계사 500명 이상 대형 GA의 외형 확장은 해마다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빠른 성장과 달리 관리·감독 사각지대는 여전히 우려되는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외형에 걸맞은 책임을 갖추기 위해 판매전문회사 전환 등 금융사급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규제 개선과 제도권 편입, 판매전문회사 도입을 앞둔 GA 시장은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대형 GA 질주 지속… 수수료 9조·설계사 30만명 눈앞
2000년대 초반 등장한 법인보험대리점(GA)은 시장 진입 이후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다. 전속 설계사가 한 보험사 상품만 판매할 수 있는 것과 달리, GA 소속 설계사는 여러 보험사 상품을 비교·제안할 수 있다는 구조적 이점이 크다. 이 때문에 설계사들의 이동도 빠르게 이뤄지며 판매 채널의 무게 중심이 GA로 쏠렸다.
GA 소속 설계사는 2002년 약 3만명으로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6년에는 20만명을 넘어서며 전속 조직을 처음 추월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30만명 안팎으로 확대돼 전속설계사(20만8000명)의 1.5배 규모가 됐다.
대형 GA의 성장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2005년 12곳에 불과했던 대형 GA는 2015년 50곳, 2020년 61곳으로 늘었고 현재는 70곳을 넘어섰다. 설계사 3000명 이상인 초대형 GA 역시 2020년 14곳에서 올해 25곳으로 증가했다.
설계사 영입 속도도 거침없다. 2015년 11만5000명 수준이던 GA 소속 설계사는 2020년 16만명, 올해 6월 기준 25만명까지 늘었다. 최근 5년간 전속설계사가 18만명 안팎에서 정체된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최초 코스닥 상장 GA인 인카금융서비스의 경우 올 상반기 기준 설계사 1만8568명을 보유하고 있다. 매출 4689억원, 영업이익 448억원으로 웬만한 중소형 보험사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GA의 대형화 추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GA의 주 수입원이 수수료인 만큼 영업 조직 규모가 곧 수익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GA 업계 관계자는 “GA는 설계사 수 등 영업 조직이 클수록 판매 활동이 활발해져 자연스럽게 수익성이 높아지는 ‘규모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며 “다만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실적이 뛰어난 우수 인력을 유치하고 오래 머물게 하는 관리 체계가 GA 수익성에 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내년 하반기 시행되는 ‘보험판매수수료 개편안’도 GA 대형화 흐름에 한층 속도를 붙일 것으로 보인다. 개편안의 핵심은 △‘1200% 룰’의 GA 확대 적용 △수수료 분급 기간 2년→7년 연장 △수수료 공개 의무화 등이다. 제도 초기에는 설계사 급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설계사들 사이에서도 수수료 측면에서 대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또 다른 GA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GA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조직 규모에 따라 차등 적용되기 때문에, 규모가 큰 GA일수록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며 “소형 GA는 수수료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 결국 생존을 위해 합병을 택하는 흐름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GA, 내부통제는 ‘보통’…보안 리스크도 ‘여전’
다만 외형 성장과 달리 관리 사각지대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내부통제와 보안 수준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24년 대형 GA 내부통제 실태평가’에 따르면, 대형 GA 75곳의 평균 등급은 3등급(보통)에 머물렀다. 우수·양호 등급(1~2등급)을 받은 곳이 29곳(38.6%)이었지만, 취약·위험 등급(4~5등급)도 22곳(29.3%)에 달했다.
규모별로 보면 설계사 500~1000명 규모 GA의 절반 이상인 52%가 취약·위험 등급으로 분류됐다. 겉으로는 ‘대형 GA’에 속하지만 내부통제 인프라는 사실상 중소형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평가가 ‘대형 GA’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형 GA의 관리 수준은 이보다 더 낮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GA업계 관계자는 “GA 역시 내부통제나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준수처럼 영업 외적 업무가 중요한 만큼 전문 인력을 갖춰야 하지만, 소형 GA는 인건비 등 운영 여력이 부족해 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영업·감사 등 기본적인 운영 기능은 보험사와 동일하게 필요하지만, 소형 GA는 이 부분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안 관리 부실 역시 핵심 리스크로 꼽힌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GA에 전산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외부 IT업체가 해킹을 당하면서, 해당 경로를 통해 일부 GA의 고객 관련 정보가 함께 유출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과 맞물려, 이세훈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은 최근 GA 업계 간담회에서 “GA 전반의 보안 수준이 매우 미흡해 금융권의 ‘가장 약한 연결고리’로 지목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금감원이 최근 발표한 대형 GA 내부통제 실태평가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그대로 드러났다. 보안과 직결되는 ‘전산시스템 구축·운영’ 부문 평균 등급이 전체 항목 가운데 가장 낮은 5등급으로 평가된 것이다. 이는 개인정보 관리·보호 의무가 보험사에 집중되고, GA의 정보보호 책임은 상당 부분 면제되는 현행 제도 구조와 무관치 않다. 현행 법적 해석상 GA는 고객정보의 ‘보유 주체’가 아니라 단순 모집·중개 조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다만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시작됐다. 우선 설계사 3000명 이상을 보유한 초대형 GA를 중심으로 금융보안원(금보원) 가입이 추진되고 있다. 한화생명금융서비스, 인카금융서비스, 지에이코리아, 글로벌금융판매, 프라임에셋, 에이플러스에셋, 신한금융플러스 등이 대상이다. 금융감독원은 향후 운영실태평가에 금보원 가입 여부를 반영할 계획이어서, 금보원 시스템을 활용해 보안 체계를 강화하려는 GA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리인에서 금융회사로” GA, 판매전문회사로 전환될까
금융당국은 GA를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디지털금융안전법을 통해 GA를 제도권으로 편입해 규제 체계 안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GA에 기존보다 강화된 내부통제 의무 등을 부여해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다.
이와 맞물려 업계에서는 ‘보험판매전문회사’ 도입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보험판매전문회사는 GA에 금융회사 수준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제도다. 현 GA 제도의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꾸준히 논의돼 왔다.
현행 보험업법은 GA를 ‘보험사를 위해 보험계약 체결을 대리하는 자’로 규정해 사실상 설계사와 유사한 법적 지위에 묶어두고 있다. 조직은 법인이지만 독자적 권한이 제한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험판매전문회사가 도입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판매전문회사는 보험사와 독립된 금융회사로서 보험상품을 직접 판매·관리하고, 수수료율·사업비·보험료 협상권 등 GA보다 훨씬 넓은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 고객정보 기반 맞춤형 서비스 제공, 유지관리 수수료 수령, 소액 보험금 지급 대행까지 가능하다.
업계가 이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이유는 단순한 협상력 제고에 그치지 않는다. 현행 체계에서는 GA가 독자적인 법률행위를 수행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분쟁 대응에서도 구조적 제약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현재는 소비자 피해 발생 시 손해배상은 보험사가 부담하고 이후 GA에 구상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한 GA 관계자는 “소송이 제기되면 GA는 당사자로 나설 수 없어 보험사에 대응을 요청해야 하지만 보험사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며 “보험사는 GA에서 환수금을 받으면 끝이지만 GA는 민원 대응이나 법적 분쟁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억울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GA가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해 1차 방어선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책임지려는 의지가 크다”며 “오히려 직접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회사 운영 측면에서도 더 합리적”이라고 부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