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 ‘사후 보상 산업’을 넘어 ‘미래 위험을 설계·관리하는 시스템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김철주 생명보험협회장은 28일 보험연구원이 개최한 ‘자본주의, 위험과 보험의 시각’ 세미나에서 “보험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인구 구조 변화와 복합 위험의 대두 속에서 보험의 역할과 방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보험산업이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적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기대수명 증가는 장기 보장의 필요성을 키우고, 만성질환과 돌봄 수요 증가는 건강·요양·연금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며 “퇴직 이후 삶의 구조가 바뀌면서 보험이 떠안아야 할 위험 스펙트럼도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사망률·질병 사고율 등 확률 기반으로 위험을 계산했지만, 이제는 위험의 분포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폭염·집중호우·가뭄 등 기후 변화도 보험사의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자연재해가 반복되면서 실제 피해액과 보험 보상액 간 괴리가 커지는 ‘보장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더해지며 보험사의 구조적 부담은 한층 가중되고 있다. 저성장은 젊은 세대의 신규 고객 유입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저금리는 예치형 상품의 수익성을 떨어뜨려 장기 부채 관리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글로벌 금리·자산시장의 변동성 확대 역시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복합 위험은 지속적이고 누적적으로 쌓이는 특성이 있어 더 이상 단일 상품이나 단일 이벤트 중심의 보장 체계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환경 변화에 따라 보험의 역할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회장은 “보험은 금융상품 제공자에 머물지 않고 위험을 다루는 플랫폼이자 시스템 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며“실제로 보험산업은 정부·병원·헬스케어 IT기업·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데이터를 공유하며 복합 위험을 관리하는 플랫폼 산업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강보험은 의료·헬스케어 서비스와 연계한 건강관리 플랫폼으로, 연금보험은 자산·돌봄·주거가 결합된 고령친화 생애설계 플랫폼으로, 재해보험은 기후 데이터·도시 안전망과 연계한 재난 대응 플랫폼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산업 간 경계를 넘는 리스크 솔루션 산업으로의 전환도 역설했다. 그는 “보험은 산업 간 경계를 넘어선 리스크 솔루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보험사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보험사만이 아니라 빅테크, 플랫폼 기업, 건강관리 기업, 모빌리티 기업 등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을 관리하는 모든 산업”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산업 내부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김 회장은 “산학연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학계 연구와 과학기술 혁신, 정부 정책이 맞물릴 때 새로운 길이 열릴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리스크·데이터 분석 전문 인재 양성 △금융·헬스케어·복지·IT를 아우르는 융합 생태계 구축 △초고령사회·기후·디지털 리스크 대응을 위한 공동 연구 플랫폼 마련 등도 필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김 회장은 “보험의 본질적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인구구조 변화와 디지털화, 복합 위험 확대 속에서 역할과 방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며 “보험의 진화는 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의 회복력을 높이는 길”이라고 힘줘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