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은 국회다. 국회는 이번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에서 신속한 계엄 해제 요구 의결을 통해 헌법 수호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 2시간 30여분 만에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키자, 국회 진입을 시도하던 계엄군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국회는 사태 이후 제도적 결함과 헌법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다만 이 과정에서 여야가 비상계엄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입법 방향으로까지 이어지며, 문제 해결을 둘러싼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4일 쿠키뉴스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국회는 지난해 12월4일 비상계엄 해제 표결 직후부터 지난 2일까지 총 8712개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 계엄 관련 법안은 모두 400건이었다. 제안명·제안이유·주요내용에 ‘계엄·내란·탄핵·파면·윤석열·대통령실·대통령경호처’ 등의 키워드가 포함된 법안은 346건이었으며, 키워드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계엄 사태와 관련된 기타 법안은 54건이었다. 각종 특검법과 특검법 수정안, 탄핵안, 결의안 등은 제외했다.
정당별 발의 현황을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328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뒤이어 조국혁신당 39건, 국민의힘 14건, 진보당 7건, 기본소득당 9건, 개혁신당 1건, 무소속 2건 순이었다.
민주당, ‘제3의 계엄’ 차단 총력…국회 계엄 해제 표결 요건 완화
민주당은 관련 법안 전체의 82%를 발의하며 사실상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난 제도적 허점을 보완하는 입법을 주도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은 △비상계엄 발동 요건 강화 △비상계엄 해제 요건 완화 △군의 정치 개입 차단 △인권 보호·피해 구제 강화 등 크게 네 가지 축으로 구분된다.
먼저 계엄 선포의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해 ‘제3의 계엄’을 차단하고자 했다. 박수현 의원이 대표발의한 ‘계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행법상 모호한 계엄 선포 절차와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 권한을 바로잡고, 국회와 국회의원을 지휘·감독 대상에서 명확히 제외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임기 중 재선포 금지 △계엄 기간 7일 내로 제한 △선포 전 국회 동의 의무화 등 무분별한 계엄 선포를 원천 차단하는 법안이 잇따랐다.
헌법재판소는 12·3 비상계엄 선포 과정 자체가 “심의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은 불법적 절차”였다고 지적했다. 국무회의가 5분 만에 종료되고 계엄선포문조차 국무위원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며, 문서 ‘부서’ 등 기본 절차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에선 헌재의 판단과 궤를 같이 하는 법안도 이어졌다. 대통령·국무총리 주재 또는 장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회의의 속기록 작성을 의무화하는 ‘공공기록물관리법 개정안’(박홍배), 해당 기록물을 고의·중과실로 생산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묻는 법안(모경종),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기록물 폐기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채현일) 등을 발의하며 기록관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은 국회 장악을 시도했고 경찰이 국회를 봉쇄했으며, 국회경비대조차 국회의원의 경내 진입을 막았다. 윤 전 대통령의 지시 때문이었다. 현재 윤 전 대통령은 계엄군뿐 아니라 경찰청·소방청 등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로 내란 재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고려해 ‘국회법 개정안’을 다수 발의했다. 국회의장의 지휘를 받는 경호경비대를 신설해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와 국회의장, 국회의원의 독립적인 보호를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만약 국회 무력화 시도가 실제로 성공했을 경우를 대비해 국회가 봉쇄되더라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의결을 즉각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도 마련하고자 했다. 천재지변·전시·사변·내란·계엄 등 국회의 정상적 집회가 물리적으로 차단되는 상황을 원격영상회의 운영 요건에 포함해, 불가피한 위기 상황에서도 원격으로 본회의를 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들이 있었다.
군에 대한 문민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도 이어졌다. 전역 후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은 예비역 장성급 장교가 국방부 장관·차관, 방위사업청장 등 핵심 보직에 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다수 발의됐다. 군정권과 군령권의 분리를 명확히 하려는 취지다. 또한 국가비상사태와 계엄 관련 법령에 대한 이해 부족이 군의 위법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군인이 매년 관련 법령을 의무적으로 교육받고 진급 심사에서 교육 이수 여부를 반영하도록 하는 법안도 있었다.
이 밖에도 △불법 비상계엄 관련 가담자 처벌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신체·정신·경제적 피해 구제 지원(진성준) △비상계엄 이후 매출이 감소한 중소기업·소상공인 경영 안정 지원(오세희) 등 비상계엄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 회복을 위한 법안도 발의됐다.
국민의힘, 국정 불안정 최소화 집중…민주당 겨냥 법안 발의도
국민의힘 발의 법안은 14건이다.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접근 방식은 민주당과 뚜렷하게 달랐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의 위헌성보다는 사태 이후 국정 운영의 불안정성과 경제·사회적 파장을 더 중점적으로 의식한 흐름을 보였다.
특히 14개의 법안 중 9개의 법안이 탄핵과 관련됐다. 현행법상 회기만 달리하면 같은 사유의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할 수 있어 국정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같은 국회 내에서는 일사부재의를 적용하되 새로운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를 두는 법안(강명구)이 있었다. 또 탄핵소추 의결 시 곧바로 직무가 정지되는 만큼 탄핵 심판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 운영 공백이 우려된다는 주장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1차적으로 탄핵소추의 정당성을 심사한 뒤 직무 정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안(최수진)도 있었다.
민주당의 잇단 탄핵 시도를 견제하려는 성격의 입법도 있었다. 김장겸·박대출·신동욱 의원은 탄핵심판이 각하되거나 기각될 경우 피청구인이 헌법재판소에 심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탄핵안을 발의한 의원 수에 비례해 정당이 그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탄핵소추의 남용을 제도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이밖에 윤 전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취약성’을 확인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하는 점을 반영해 국가정보원의 보안점검 대상에 선관위를 포함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강선영), 군형법에서는 ‘내란 수괴’ 표현을 ‘내란 우두머리’로 바꾸는 법안(조승환) 등도 있었다.
다만 국민의힘의 경우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이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통해 드러났음에도 이에 대한 후속 대책 차원의 별도 입법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