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덜어도 ‘디테일 변태’, 자꾸 궁금한 감독 하정우 [쿠키인터뷰]

욕심 덜어도 ‘디테일 변태’, 자꾸 궁금한 감독 하정우 [쿠키인터뷰]

영화 ‘윗집 사람들’ 감독 겸 배우 하정우 인터뷰

기사승인 2025-12-09 06:00:11
감독 겸 배우 하정우.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윗집 사람들’은 숨 돌릴 틈이 없다. 인물들의 대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이어지고, 대사마다 놓치면 아쉬울 웃음 포인트가 녹아 있다. 볼거리도 쏟아진다. 극중 임정아(공효진)의 취향으로 꾸며진 아랫집부터 최수경(이하늬) 김선생(하정우) 부부의 요가까지, 조금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혼을 쏙 빼놓는다. 관객도 진이 빠지는데 현장은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절로 인다. 심지어 하정우는 감독과 배우를 겸했다. 그러나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최근 서울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상대적으로 욕심이 덜 했다”며 앞선 세 연출작과 달랐던 점을 밝혔다.

‘윗집 사람들’은 매일 밤 섹다른 층간소음으로 인해 윗집 부부(하정우·이하늬)와 아랫집 부부(공효진·김동욱)가 함께 하룻밤 식사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예측불허 이야기다. 지난 3일 개봉했다. 무엇보다 하정우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그는 “전작들을 보면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 보인다. 자꾸 뭔가를 말하고 인정받고 싶었던 욕구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엉키는 부분도 있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과욕이었다”고 돌아봤다.

이러한 이유로 힘을 덜어낸 하정우는 함께한 배우 김동욱, 공효진, 이하늬를 믿었다. 특히 애드리브를 선호하지 않으면서도 공효진에게는 여지를 줬다. 그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사를 수정하면서 작업했다. 다 짜놓고 100% 소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효진이의 연기 스타일이 야생동물 수준이다. 그게 매력이다. 너무 사실적이고 사랑스러운 화법이다. 그래서 효진이만 예외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 곳곳에서 감독 하정우의 디테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캐릭터 설정만 해도 그렇다. 기복이 큰 이현수(김동욱)에게서 상업영화계에 자리 잡지 못한 감독을 떠올렸고, 이 배경에 처가살이를 연결하면서 임정아는 직접 집을 꾸민 미술 강사가 됐다. 이들을 중재하는 최수경에게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전문의가 입혀졌고, 김선생은 스와핑을 연상하기 힘든 직업이면서도 어쩐지 낭만적인 한문 선생님으로 낙점됐다.

감독 겸 배우 하정우. (주)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공간과 이를 담는 방식 역시 하정우의 섬세한 터치로 완성됐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단일 공간과 다름없는 아랫집은 임정아로 분한 공효진의 실제 집을 참고해 세팅했고, 가장 큰 그림 소품은 직접 그렸다. 하정우는 “매체를 통해 공개된 효진 씨 집을 보면서 어떤 소품을 놓았다든지, 식물을 좋아한다든지, 이런 감성을 가지고 정하기 시작했다”며 “메인 컬러는 오렌지다. 그림을 그릴 때는 어려워서 잘 안 쓴다. 그렇지만 정아는 유학을 다녀와서 나름대로 감각이 있을 거고 결혼 후 다 내려놓고 시간강사 일을 하는데, 얘의 숨결은 집에 살아 숨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김선생이 권하는 주황색 탄산음료도 우연이 아니었다. 하정우는 “다들 음료를 다 거부하다가 마지막에 마시는 것도 정아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의미에서 심어놓은 부분”이라고 귀띔했다.

한정적인 공간 속 동선에 대해서는 “두 컷 빼곤 카메라가 비현실적인 위치로 절대 가지 않는다.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실제 공간에 카메라를 두고 찍는 것처럼 촬영했다. 그러려면 더더욱 동선을 다 짤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원작 영화 ‘센티멘털’(Sentimental) 속 탱고가 아크로요가로 바뀐 것 또한 하정우의 아이디어다. 하정우는 “흔한 설정 같아서 새로운 게 없을지, 생뚱맞은 게 없을지 생각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행위를 고민했다. 요가 종류도 엄청 많은데 테이블을 밀어 놓고 요가를 하면 얼마나 정아와 현수가 불편할까 싶어서 아크로요가를 택했다”고 얘기했다.

이렇게 촘촘한 설정이 “한 보따리”인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아 많은 관객이 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정우는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섹스 코미디’라는 장르가 아닌, 이 작품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 고민했지만 15세 등급을 받아서 될 일도 아니었다”며 “그 상황에 놓인 공효진과 김동욱의 리액션이 재밌는 건데 대사 수위를 낮추면 그 재미가 반감된다. 이 부분을 거세했다면 밋밋해졌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권태기였던 아랫집 부부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주는 메시지는 보편적이다. 하정우는 “원작을 봤을 때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감정이고 굉장히 친숙한데 잃어버렸던 것 같았다”며 “후반에 우리를 연결해 주는 건 메신저 앱밖에 없고 우리는 굉장히 현대적인 커플이라는 대사가 있다. 요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스페인 영화라고 하면 멀어 보이는데 가깝게 느껴졌다”고 밝혔다.

하정우의 다섯 번째 연출작은 어떨까. 그는 “고집부리고 싶진 않다. 변화에 자연스럽게 제 생각과 마음을 놓으려고 하고 있다”면서도 “아이러니를 정말 좋아한다”고 답했다. 이어 “작품을 예로 들면 그렇게 차가워졌던 아랫집 부부가 윗집 사람의 이상한 제안으로 달라진다, 정말 우울하다가도 어느 순간 본 유튜브가 나를 위로해 준다, 몇 년 동안 고민했던 것을 찰나의 자극으로 깨닫게 된다, 우연에 가린 이러한 인과관계가 흥미롭다”고 덧붙여 향후 그가 나아갈 방향을 가늠하게 했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