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공지능(AI) 기반 ‘슈퍼앱(Super App)’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 챗봇을 넘어 결제, 쇼핑, 모빌리티, 콘텐츠까지 AI 에이전트를 중심으로 모든 기능을 통합하는 플랫폼 전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국내 플랫폼들은 규제와 조직 구조의 한계에 발목이 잡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2027년까지 전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매일 복수의 슈퍼앱을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은 ‘AI 중심’ 통합…검색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글로벌 기업들은 AI를 중심으로 슈퍼앱을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다. 오픈AI는 최근 챗GPT에 쇼핑 관련 질문을 해결해주는 ‘쇼핑 리서치’ 기능과 앱 내 결제를 지원하는 ‘인스턴트 체크아웃’을 추가하며 전자상거래 시장에 진출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조용한 스틱형 청소기를 찾아줘”라고 요청하면 챗GPT가 정보조사를 통해 맞춤형 구매 가이드를 제공해준다.
중국도 슈퍼앱 전쟁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는 11월17일 Qwen 앱 베타 버전을 공개했다. 이 앱은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대형언어모델(Qwen3)을 기반으로 하며, 단순 챗봇을 넘어 AI를 통한 문서 작성, 프레젠테이션 생성, 이미지 제작, 연구분석, 음성 통화 등 다양한 기능을 한데 묶는다.
알리바바는 향후 지도·배달·여행·쇼핑·교육·헬스케어 등 주요 생활 서비스까지 Qwen 앱에 통합해 진정한 AI 슈퍼앱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중국 텐센트도 2025년 중순 AI 어시스턴트 ‘위안바오’를 모바일 플랫폼 ‘위챗’에 통합했다. 위챗 이용자는 이제 대화창 하나에서 별도 앱 없이도 문서 검색, 콘텐츠 생성, AI 기반 통화 등을 모두 할 수 있다. 텐센트 측은 “AI가 사용자의 디지털 행동을 이해하고 자동 실행하는 단계로 간다”고 설명한다.
중국 텐센트는 통합 이후 위챗의 체류 시간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2025년 2분기 기준 위챗의 하루 평균 체류시간은 79분 42초로, 월간활성사용자(MAU) 14억명 기준 하루 총 18억7000만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외에도 싱가포르의 그랩, 중국의 알리페이, 미국 메타의 왓츠앱 등 주요 플랫폼들이 송금·쇼핑·예약·배달·문서 생성 등을 하나의 앱에 통합하는 AI 슈퍼앱 전략을 발표했다. 예컨대 왓츠앱에는 이미지 생성·채팅 요약·음성 채팅 지원 기능 등이 추가됐고, 일본의 라인·야후 재팬은 채팅 중 답변과 이모티콘(스탬프)을 추천해주는 ‘라인AI’ 어시스턴트를 선보였다
카카오·네이버는 ‘조각형 통합’…조직은 제가각
국내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카카오는 11월8일 오픈AI와의 독점 협력을 바탕으로 ‘AI 슈퍼앱’ 출시를 예고했지만, 구체적인 서비스 통합 범위는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카카오톡·카카오톡비즈·카카오페이·모빌리티·음원 서비스 등이 각각 다른 앱과 조직으로 나뉘어 있어 ‘AI 중심 재편’이 쉽지 않은 구조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계열사 구조를 재정비하며, 카카오톡 중심의 AI 플랫폼(MCP) 개발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도 슈퍼앱 구현을 노리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네이버파이낸셜과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의 합병을 공식화했다. 이를 통해 간편결제와 가상자산 거래를 결합한 거대 핀테크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이 거래는 금융위의 대주주 변경 승인, 증권신고서 제출,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등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특히 공정위는 네이버의 방대한 결제·쇼핑 데이터와 업비트의 거래 데이터가 결합돼 초대형 데이터 플랫폼이 될 경우 경쟁 제한성이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엄격히 심사할 전망이다. 공정위 측은 “데이터 독점과 락인 효과, 우월적 지위 남용을 엄격히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규제·조직 구조·시장 포화 ‘3중 병목’
전문가들은 국내 플랫폼이 글로벌 슈퍼앱 흐름에 뒤처지는 핵심 원인으로 규제, 조직구조, 데이터 통합의 병목을 지목한다. DS투자증권은 카카오가 공격수 역할로 AI 서비스를 가장 빠르게 추진하는 반면, 네이버는 일부 AI 솔루션 적용에 그치고 있어 데이터 공유 없이는 고도화가 어렵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슈퍼앱은 하나의 앱에서 송금·쇼핑·모빌리티·문서 생성까지 ‘수직 통합’하지만, 한국에서는 동일 기능이라도 금융위·공정위·방통위 규제가 겹치며 통합 속도가 늦어진다.
국내 시장 포화도 역시 문제로 거론된다. 한국은 이미 플랫폼 침투율이 높아 ‘앱 간 M&A 통합’을 통한 확장이 어렵다. 해외도 카카오 픽코마를 제외하면 존재감이 약하다. 카카오픽코마는 현재 일본에서 디지털만화·소설플랫폼 픽코마를 운영중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AI 슈퍼앱 시대가 본격화하면, 플랫폼·금융·모빌리티·쇼핑·콘텐츠가 하나의 앱 안에서 움직인다”이라며 “한국은 AI가 서비스 간 경계를 허무는 경험적 데이터가 부족할 뿐 아니라 한국의 규제 틀을 그대로 둔 채 글로벌과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