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제도 시행 37년 만에 처음으로 조기노령연금 수급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은퇴 후 연금을 받기 전까지 소득이 없는 이른바 ‘소득 크레바스(소득 공백기)’를 견디지 못한 장년층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9일 국민연금공단의 최신국민연금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5년 7월 기준 조기노령연금 수급자는 100만717명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 선을 돌파했다. 증가세는 계속 이어져 한 달 뒤인 8월에는 100만5912명을 기록했다.
성별로 보면 8월 기준 남성 수급자가 66만3509명, 여성 수급자가 34만2403명으로 나타났다. 남성 수급자가 여성 수급자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이유는 가계의 주 소득원이었던 남성 가장들이 은퇴 후 소득 단절을 메우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조기 연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조기노령연금은 법정 지급 시기보다 1년에서 최대 5년까지 앞당겨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연금을 일찍 받을 때마다 연금액이 연 6%(월 0.5%)씩 깎인다는 점이 이 제도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예를 들어 5년을 당겨 받으면 원래 받을 연금의 70%밖에 받지 못한다. 이에 조기노령연금은 일명 ‘손해연금’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수급자가 100만명을 넘었다는 것은 그만큼 당장의 현금 흐름이 절박한 은퇴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2023년부터 조기노령연금 수급자 증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지금의 100만명 돌파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국민연금 공표통계 자료를 보면 2023년은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에만 조기 연금 신규 신청자가 6만3855명에 달해 불과 반년 만에 전년도(2022년) 1년 치 전체 신규 수급자 수(5만9314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뒤로 밀린 것이 당시 조기 연금 수급자가 급증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재정 안정을 위해 1998년 1차 연금 개혁 이후 수급 개시 연령을 단계적으로 늦춰왔는데, 2023년에 수급 연령이 만 62세에서 63세로 한 살 늦춰지면서 1961년생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국민연금연구원의 당시 조사에 따르면 조기 연금 신청자의 상당수가 ‘생계비 마련’을 최우선 사유로 꼽았다.
조기 연금 수령은 장기적으로 조후 빈곤을 심화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당장의 생활비를 해결하기 위해 연금을 앞당겨 받으면 죽을 때까지 감액된 연금을 받아야 한다.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연금액이 최대 30%까지 줄어든다는 것은 노후 안전망이 그만큼 헐거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비자발적 조기 수급자가 늘어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법정 정년(60세)과 연금 수급 개시 연령(현재 63세, 향후 65세) 간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은퇴 후 재취업 시장 활성화 등 소득 크레바스를 메울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