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OTT 촬영지 방문 급증…체류·소비 중심 성장 정책 가속
콘텐츠–관광–지역경제 잇는다…“한류 수요 흡수할 인프라 절실”
기사승인 2025-12-16 11:00:05
K팝과 OTT 등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이 외국인 관광 수요로 빠르게 전이되면서, 이를 체류와 소비로 연결하기 위한 관광 인프라 확충 필요성이 정책 과제로 부상했다. 콘텐츠 확산이 단기 방문 증가에 그치지 않도록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정부는 내년도 관광 예산을 큰 폭으로 늘렸다. 콘텐츠 성장과 관광 정책이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는 구조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그래픽 한지영 디자이너 16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의 2026년 예산은 7조8555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본예산 대비 7883억원(11.2%) 증가한 규모다. 이 가운데 관광 분야 예산은 1조4804억원으로, 전년 대비 1327억원(9.8%) 늘었다.
문화예술(2조6654억원), 콘텐츠(1조6177억원), 체육(1조6987억원) 등 전 부문이 확대됐다. 관광 예산 증액은 특히 콘텐츠 흥행으로 급증한 외래객 수요를 단기 방문에 그치지 않고 체류·소비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정부는 내년도 관광 예산에서 관광산업 금융지원을 7105억원으로 확대해(+910억원) 숙박·체험·교통 등 체류 인프라 확충에 대한 정책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이번 관광 예산 확대를 ‘홍보 중심 예산’에서 ‘수요 대응형 인프라 투자’로 무게 중심을 이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에 나오는 사자보이즈를 따라한 외국인 관광객. 서울시 제공 K팝·OTT 촬영지 방문 급증…체류·소비 중심 성장 정책 가속
이 같은 예산 확대의 배경에는 빠르게 늘어난 인바운드 수요가 있다. 올해 1~10월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1582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K팝 공연, 드라마·애니메이션 촬영지, 웹툰·캐릭터 IP 등 콘텐츠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외국인 관광 수요가 주요 방문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아사카(25·여)씨는 “원래 K-POP 아이돌을 좋아했는데 케데헌이 화제가 된 이후 주변에 케이팝 좋아하는 친구가 훨씬 많아졌다”며 “이번에는 그 친구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서도 콘텐츠 일정에 따라 외국인 관광 수요가 급격히 쏠리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울과 부산에서는 대형 K팝 공연이나 글로벌 OTT 콘텐츠 공개 시점에 맞춰 인근 호텔 객실이 조기 매진되는 사례가 잇따랐다. 주중이나 비수기임에도 외국인 예약이 급증하면서, 공연·콘텐츠 일정에 따라 숙박 요금이 단기간에 오르거나 교통·체험 상품이 빠르게 소진되는 현상도 반복됐다.
이는 콘텐츠 흥행 속도에 비해 이를 감당할 관광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는 업계 지적과 맞닿는 지점이다. 콘텐츠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숙박·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는 방문객이 당일치기에 그치거나 인근 대도시로 이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콘텐츠가 만든 방문 수요가 곧바로 지역 체류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국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K팝 공연이나 글로벌 OTT 콘텐츠 흥행 시 특정 시기에 외국인 수요가 집중되면서 예약 패턴 변동 폭이 커지고 있다”며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은 수요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관광 예산 확대와 함께 지역 확산 사업을 병행하는 배경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콘텐츠 기반 방문 수요를 지역으로 확산시키는 신규 사업을 내년부터 본격 추진한다. 지역관광 선도권역(50억원), 핫스팟 가이드(10억원) 사업이 대표적이다. 촬영지나 공연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광 수요를 인근 지역으로 연결해 체류 시간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서울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연합뉴스 ‘핫스팟’에서 ‘체류’로…지역 확산 전략 본격화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 확대가 인바운드 회복 흐름과 맞물린 적절한 대응이라고 평가한다. 안희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은 “올해 인바운드 시장은 역대 최고 수준의 회복세를 보이며 업계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콘텐츠 기반 관광 수요를 구조적으로 흡수하기 위한 예산 확대라는 점에서 방향성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외래객 유치가 국가별 마케팅과 이벤트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콘텐츠 흥행으로 자연 유입된 수요를 어떻게 체류와 소비로 연결할지가 정책의 중심 과제로 떠올랐다”며 “서울에 집중된 방문 패턴을 완화하고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전략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의 방향을 콘텐츠–관광–지역경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 이른바 ‘K컬처 경제권’ 구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콘텐츠가 만든 글로벌 팬덤을 관광 수요로 연결하고, 이를 다시 지역 체류·소비로 확장하는 구조를 정책적으로 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단순 방문객 수 증가보다 체류일수와 1인당 소비 확대를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콘텐츠 기반 관광이 향후 국내 관광산업 구조를 재편할 변수로 떠오른 만큼, 이에 맞춘 인프라 투자 성과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