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건설할 미국 현지 제련소에 미 정부가 지분 참여 형태로 투자한다는 계획이 공개되면서, MBK파트너스·영풍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영풍 측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사익(경영권 방어)을 위해 ‘아연 주권’을 포기했다며 반발하고 있어, 내년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실상의 전초전이 시작됐다.
15일 제련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이러한 내용의 미국 제련소 투자 계획 의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고려아연과 미 측이 합작법인(JV)을 만들어 미 남동부에 전략광물 제련소를 건립할 예정이며, 총 투자금은 약 10조원이 될 전망이다.
투자금은 JV가 현지에서 차입하며, 미국의 국방부, 상무부, 방산 전략기업 등이 약 2조원 규모의 투자 형태로 참여하게 된다. 고려아연이 향후 해당 JV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게 되면 미 정부 측이 고려아연 지분 약 10%가량을 확보할 전망이다. 울산 온산제련소를 모델로 하는 미국 현지 제련소는 안티모니, 게르마늄 등 고려아연이 국내에서 생산하는 전략광물 품목 상당수를 현지에서 생산·공급하는 거점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지난 8월 최윤범 회장이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발표한 미국과의 전략광물 협력 방안을 구체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 정부가 직접 투자에 참여하면 고려아연이 ‘미국의 안보 자산’으로 분류돼 MBK·영풍 측의 M&A 추진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에 영풍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영풍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의 최대주주인 영풍과 MBK 측 이사들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이토록 중대한 안건에 대해 사전 보고나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고, 이사회 당일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해당 사실을 접하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이는 이사회의 기능을 무력화하는 심각한 절차적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영풍은 “고려아연이 제련소 직접 투자가 아닌,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택한 것은 자금 조달 목적이 아니라 최 회장의 경영권을 방어해줄 백기사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며 “특히 미 정부 기관이 해외 민간기업에 JV를 통한 ‘우회 출자’를 택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해당 자금이 순수한 투자인지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온산제련소의 ‘쌍둥이 공장’을 미국에 짓게 되면 국내 제련산업 공동화는 물론, 핵심 기술 유출 위험까지 초래하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당사는 이번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의 절차적 정당성과 사업적 실체를 철저히 따져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 측은 미국 제련소 건설 투자 형태와 관련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전략 광물 확보 경쟁에 대응하기 위한 중장기 투자로, 현재 진행 중인 경영권 분쟁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가 등기임원 19명 중 직무정지된 4명을 제외하면 고려아연 측 11명, MBK·영풍 측 4명으로 구성돼 있어, 투자 계획이 부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측 역시 지난 13일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거쳤고, 이사회 소집을 사전에 알렸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사회 이후 MBK·영풍 측이 가처분 등 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양사는 올 1월과 3월 열린 임시주총과 정기주총의 효력정지 여부를 놓고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고려아연의 미국 자회사가 2022년 인수한 전자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를 놓고 적법한 투자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양사가 그동안 진행해 온 송사와 더불어 미국 투자 계획을 놓고 내년 주총까지 공방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이번 투자 계획 진행 여부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열쇠를 쥔 ‘캐스팅보트’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어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