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로템이 폴란드를 넘어 페루에서 K2 전차와 차륜형 장갑차(K808) 수주를 예고하며 ‘K-방산’ 영토 확장에 나섰다. 업계는 이번 성과를 단순한 수출 계약을 넘어,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가성비를 앞세운 글로벌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신호탄으로 평가하고 있다.
15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현대로템은 지난 9일(현지 시간) 페루 리마에서 페루 육군 및 육군 조병창(FAME S.A.C.)과 K2 전차 및 K808 차륜형 장갑차 공급에 대한 ‘총괄합의서(Framework Agreement)’를 체결했다. 이번 합의는 본계약 직전 단계로, 사실상 수주를 확정 짓는 절차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페루 진출은 폴란드에 집중됐던 수출 구조에서 벗어나 남미 시장을 본격 공략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현지 공급망 구축을 통해 향후 후속 군수지원(MRO) 분야까지 선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시급했던 시장 다변화에 숨통이 트였다는 분석이다. 현재 한국 방산의 유럽 점유율은 사실상 폴란드 계약이 견인하고 있어,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고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심순형 산업연구원 안보전략팀 연구위원은 “폴란드 하나에 과도하게 쏠려 있던 K2 수출 비중을 정상화하고 시장을 넓히는 성과로 봐야 한다”며 이번 수출을 ‘필수적인 다변화’ 과정으로 진단했다.
이번 수주전의 승부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였다. 선진국 위주로 안보 논리와 기술 경쟁력이 우선시되는 유럽과 달리, 개발도상국이 주축인 중남미 시장은 예산 효율성이 핵심이다. 현대로템은 경쟁 기종인 중국 VT-4 전차 대비 압도적인 성능과 신뢰성을 입증하며, ‘저렴하지만 성능이 아쉬운 중국산’의 대안으로 ‘합리적 가격에 서방권 표준 성능을 갖춘 한국산’의 입지를 굳혔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유럽은 ‘바이 유러피안(Buy European)’ 기조 등 정치·외교적 셈법이 복잡하지만, 중남미나 아프리카 등은 철저히 예산 범위 내에서 최고의 성능을 찾는 실리적 시장”이라며 “가격 경쟁력과 더불어 중국산 무기가 보여주지 못한 운용 신뢰성을 입증한 것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향후 페루가 남미 시장 공략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2016년 KF-21 개발 당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공동 마케팅’을 조건으로 내걸어 수출 판로를 넓힌 바 있다. 이번 페루 수출 역시 현지 생산을 통해 ‘Made in Latin America’로서 이웃 국가들에 거부감 없이 진출하고, 페루 정부와 공동 마케팅을 펼치는 거점 전략이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판매 이후 발생하는 경제적 파급 효과, 이른바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닻 내림 효과)’가 기대된다. 전차와 같은 대형 무기체계는 한 번 도입하면 최소 30년 이상 운용해야 하는 만큼, 도입국은 부품 공급과 정비, 성능 개량 등 MRO 분야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무기 수출은 일회성 거래에 그치지 않고 수십 년간 부품 수출과 정비 시장(After Market)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창출한다”며 “이번 수출이 현대로템뿐만 아니라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중소 협력사들에게도 장기적인 낙수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개발도상국이 밀집한 중남미 지역 특성상, 상대적으로 낮은 구매력은 과제로 남는다. 이에 대해 심 연구위원은 “중남미 국가들은 현금이 부족한 대신 광물이나 원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며 “무기 대금 대신 자원을 받는 ‘현물 거래(Countertrade)’나 금융 지원 프레임워크를 정교하게 짠다면 방산 수출이 국가 자원 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