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라면이 왜 지금 나왔는지, 첫 끓임에서는 선뜻 감이 오지 않았다. 볶음면이 넘쳐나는 요즘, 국물 라면도 모자라 우지를 전면에 내세운 선택은 다소 묵직해 보였다. 물이 끓고 액상 스프를 붓자, 자극적인 향 대신 고기 국물 특유의 무게감이 먼저 올라온다. ‘요즘 유행과는 반대 방향이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삼양식품이 최근 선보인 ‘삼양1963’ 이야기다. 제품명 ‘1963’은 삼양식품이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한 해에서 따왔다. 이름부터가 과거를 소환한다. 우지를 전면에 내세운 국물 라면이라는 점에서도, 이 제품은 요즘 라면들과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스프 구성은 액상과 분말, 두 가지다. 액상 스프는 사골육수를 바탕으로 우지의 고소한 풍미를 살리는 역할을 하고, 후첨 후레이크에는 무·대파·청양고추가 들어 있어 국물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끓이기 시작하면 먼저 액상 스프가 풀리며 국물의 기본 맛이 만들어지고, 후첨 후레이크를 넣으면 큼직한 대파 조각이 국물 위로 떠오른다. 청양고추의 매운 향이 은은하게 올라오지만, 요즘 쏟아지는 고자극 라면들과 비교하면 체감상 ‘얼큰한 국물’ 선에 머문다. 매운맛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국물의 밀도를 다지는 쪽에 가깝다.
첫 숟갈에서도 같은 인상이 이어진다. 혀를 확 잡아채는 자극 대신, 국물의 감칠맛과 무게감이 먼저 느껴진다. 사골·닭·해산물 베이스가 겹겹이 쌓이며 국물의 깊이를 만들고, 우지가 그 중심을 받친다. 다만 이 풍미가 끝까지 강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 조리 전 생라면을 뜯어 먹었을 때는 고소한 기름 향과 소고기 풍미가 확 올라왔지만, 완성 단계에서는 후첨 스프의 향에 다소 묻힌다. 면 역시 식감 면에서 기대만큼 뚜렷한 차별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라면의 포인트는 국물이다. 설렁탕에 매운맛을 살짝 더한 듯한 인상을 주다가, 먹다 보면 육개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국물에 밥을 말고 싶어진다. 실제로 국물에 밥을 넣자, 기름진 느낌이 줄고 국물이 한결 깔끔해졌다. 칼국수 면을 넣어 끓여도 잘 어울린다. 국물의 성격이 더 또렷해지면서, 라면이라기보다는 국물 요리에 가까운 인상마저 준다.
여기까지 맛만 놓고 보면, 삼양1963은 유행을 좇기보다 자기 속도를 택한 라면에 가깝다. 볶음면이 대세가 된 라면 시장, 글로벌 흐름 역시 국물 없는 제품으로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 삼양은 다른 길을 택했다. 이 선택의 배경에는 불닭볶음면이라는 글로벌 성공 경험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 세계 시장에서 볶음면으로 확실한 성과를 거둔 브랜드이기에, 같은 흐름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꺼낼 여지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삼양1963은 출시 한 달 만에 누적 판매량 700만개를 넘어섰다. 기존 삼양라면(오리지널)의 월평균 판매량과 비교하면 약 80%를 웃도는 수준이다.
삼양1963이 주목받는 이유는 맛에만 있지 않다. 삼양라면은 1963년 한국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으로 출시됐다. 식민 지배의 상처와 6·25 전쟁의 폐허가 겹쳐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라면은 값싸고 빠른 생존의 음식이었다. 하지만 1989년 이른바 ‘우지 파동’은 브랜드의 흐름을 송두리째 바꿨다.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제보로 검찰 수사가 진행됐고,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불매운동까지 확산됐다. 한때 70%에 달했던 삼양의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은 10% 미만으로 급락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사 결과 삼양이 사용한 우지는 식용 등급이었고, 1995년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했다. 그러나 시장의 신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우지는 이후 30년 넘게 식품업계에서 꺼내기 어려운 단어가 됐다. 고소함과 깊은 맛의 상징이었던 재료는 금기어로 남았고, 삼양은 ‘우지’와 거리를 둔 채 브랜드를 이어가야 했다.
삼양1963은 그 기억을 정면으로 마주한 제품이다. 이번 제품에서 우지는 다시 고소함과 정통의 상징으로 호출된다. 소비자 인식이 달라지고 프리미엄 라면 시장이 커지면서, 고깃국물의 진한 풍미는 ‘투박하지만 제대로 된 맛’으로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삼양식품은 이를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중장기 프리미엄 라면 라인업의 출발점으로 봤다. 과거를 소환하되, 그 기억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가격 역시 전략을 분명히 보여준다. 대형마트 기준 4개입 묶음 가격은 6150원. 봉지당 약 1538원으로, 개당 700원대인 기존 삼양라면보다 약 두 배 비싸다. 하림 ‘더미식 장인라면’, 농심 ‘신라면 더 블랙’ 등 기존 프리미엄 국물 라면들과 비슷한 가격대다.
총평하자면 자극적이지도, 가볍지도 않다. 다만 한 번에 기억을 붙잡을 만큼 강렬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글로벌 볶음면 트렌드를 이끌어본 브랜드이기에 가능한 역방향 시도라는 점에서, 삼양1963은 하나의 결과물이자 다음 선택을 예고하는 제품처럼 보인다. 아직은 출발선에 가깝다. 첫 시도를 통해 방향성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 이어질 후속 제품과 라인업이 더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