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말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제시했다. 개선 방향은 크게 △제네릭(복제약) 약가 인하 및 시장 구조 개선 △급여의약품에 대한 경제성 평가 강화 △건강보험 재정이 부담되는 고가 치료제에 대한 관리체계 정비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제네릭 약가는 기존 오리지널 대비 53.55% 수준에서 40%까지 깎인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고, 제약산업을 제네릭 중심에서 신약 연구개발(R&D)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제네릭이 난립한 것은 사실이다. 평균 수천억원대의 R&D 비용과 장기간 임상이 필요한 오리지널 신약과 달리 제네릭은 개발비나 시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국내 제약사들은 제네릭 생산에 집중해 왔다. 제네릭은 국내 급여의약품의 약 90%를 차지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4 급여의약품 청구 현황’을 보면 지난 1월 기준 급여의약품 등재 품목은 2만1962개다. 이 가운데 단독 성분으로 등재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2474개(11.3%)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은 동일 성분의 제네릭이 함께 등재된 구조다. 제네릭 처방액은 전체 약품비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보건복지부의 ‘제네릭 의약품 약가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2년 전체 약품비 25조9000억원 중 제네릭 처방액은 53%인 13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명목은 좋다. 방식이 잘못됐을 뿐이다. 제네릭과 개량신약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제약산업을 하루아침에 신약 중심으로 뒤집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글로벌 수준의 신약 개발 역량이나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제약사들이 많다. 특히 중소 제약사의 경우 매출의 상당 부분을 제네릭에서 얻고 있다. 약가 인하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미 누적된 약가 인하 제도로 인해 수익성은 악화된 상태다. 생산 원가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한 기업은 도산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R&D와 생산시설 투자를 이어온 제약사들에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을 부여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지만, 당장 생존을 고심하는 기업들이 R&D에 적극 투자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신약 R&D 투자에 대한 리스크는 여전히 높고, 성공 확률은 낮은데 정부의 ‘당근책’이 실효적일지 의문이다.
과정도 틀렸다. 그간 약가제도가 시행착오를 거칠 때마다 부작용이 발생해 업계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2012년 대대적인 약가 인하 정책으로 수많은 기업의 경영이 흔들렸고 이 파장은 2019년까지 이어졌다. 또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8000여 개 품목의 약가가 깎였다. 구조적 압박에 비해 혁신 보상 장치는 제한적이다. 기존 약의 단점을 보완한 국산 신약들이 출시됐지만, 약가 우대 혜택을 받지 못해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동안 제네릭 생산을 통해 쌓아온 제조 기반과 품질 관리 능력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를 단순히 낮은 부가가치라는 이유로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을 독려하려면 실질적인 인센티브와 장기적인 로드맵을 함께 내놔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정부 정책이 단기 성과에 급급해 방향을 자주 바꾼다면 제약사들은 중장기적 투자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R&D는 5년, 10년 이상을 내다보는 장기전이다. 산업의 특성과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결국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이는 혁신의 싹을 자르기 마련이다.
한국 제약산업이 세계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술력과 함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신약 개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단순히 약가를 깎는 방식으로는 글로벌 제약 강국들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
해답은 ‘균형’에 있다.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면서 제약산업이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약사들은 혁신을 마다한 적이 없다. 제약산업을 비용의 주범이 아닌 국민 건강 증진과 산업 성장의 동력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 가치를 인식하고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을 구축할 때 비로소 ‘신약 중심 산업’ 전환이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