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밖 출생’ 이유로 배제된 아이들…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현실 [쿠키청년기자단]

‘북한 밖 출생’ 이유로 배제된 아이들…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현실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5-12-21 17:11:23 업데이트 2025-12-21 17:12:19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는 출생지가 북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북한 출생 자녀와 달리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Gemini 생성 이미지. 

같은 탈북민 자녀임에도 ‘북한 밖 출생’이라는 이유로 제도적 지원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다. 이들은 전체 탈북 학생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교육·주거·취업 등 정착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는 북한 출신 부모를 둔 채 중국 등 제3국에서 태어난 자녀를 말한다.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탈북 학생 1534명 가운데 1154명(75%)이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다. 탈북 학생 4명 중 3명 이상이 북한이 아닌 제3국에서 태어난 셈이다.

김윤수(20·남·가명)씨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다. 김씨의 어머니는 지난 2003년 북한의 경제난을 피해 중국으로 탈북했고, 현지에서 김씨를 낳았다. 당시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지내며 신분 노출과 강제 북송에 대한 불안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2019년 강제 북송을 피해 한국에 입국했다. 김씨는 18세가 되던 해인 2023년,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유년기 대부분을 중국에서 보낸 탓에 언어와 문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국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김씨는 북한이 아닌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탈북민에 대한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은 북한에 주소나 직계가족 등을 두고 북한을 벗어난 사람만을 ‘북한이탈주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씨와 같은 제3국 출생 자녀들은 법적으로 탈북민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북한 출생 기준에 막힌 교육 지원, 정규 학교 적응의 어려움

북한에서 태어난 탈북 학생은 정부의 교육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이들은 한국 입국 이후 하나원(탈북민 사회 적응 교육기관)에서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과 사회 적응 교육을 받는다. 또한 정규 학교로 편입할 경우 별도의 멘토링과 적응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 출생이 아닌 김씨는 이러한 교육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역시 김씨의 언어 학습이나 사회 적응을 충분히 돌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김씨는 혼자 한국어를 익혀야 했다. 김씨는 “웹툰을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받지 못한 김씨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중국인이 왜 한국 학교에 다니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김씨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경기도의 한 대안학교에 입학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같은 탈북민 자녀인데…주거·취업 정착 지원에서도 제외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출생 탈북민은 1인 세대 기준 1000만원의 정착기본금을 지원받는다. 2~4인 세대는 1600만원에서 26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또한 1인 세대 기준 1600만 원의 주거 지원금이 별도로 제공된다. 이 밖에도 정부는 취업장려금과 새출발장려금 등을 통해 북한 출생 탈북민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주거·취업 등 정착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정착 지원은 2017년 신설된 ‘자녀 양육 가산금’ 제도가 유일하다. 이 제도는 만 16세 미만 자녀가 있는 가정에 최대 2인까지, 1인당 450만 원의 양육 가산금을 지원한다. 김씨처럼 고등학생 연령 이후 한국에 입국한 경우에는 이마저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제도적 공백은 김씨의 현재 생활에도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정착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어머니는 경남 창원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어, 김씨와 함께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현우씨가 기자의 질문을 이해하기 위해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한국에 입국한 그는 한국어가 서툴러, 간단한 대화도 번역기의 도움 없이는 이어가기 어렵다. 사진=한주성 쿠키청년기자  

병역 의무 문화 차이까지…적응의 이중 부담


북한에서 태어난 탈북민 자녀는 한국 사회 정착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된다. 반면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는 이러한 기준에서 제외돼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2024년 3월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한국으로 온 박현우(23·남·가명)씨는 내년 2월 육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박씨는 기자의 질문에 번역기 없이는 답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어가 서툴렀다. 그는 입대 이후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성인이 된 뒤 한국에 정착한 탓에 한국 문화 전반이 낯설어, 군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 적응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가 군 복무 과정에서 괴롭힘과 차별을 겪은 사례가 있었다. 군인권센터가 올해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육군 1포병여단 소속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A씨는 부대 내에서 ‘짱개’, ‘짭코리아’ 등 혐오 발언을 듣고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A씨는 간부들에게 여러 차례 고충을 호소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A씨는 지속적인 괴롭힘 끝에 중상을 입는 사건을 겪었다.

모춘흥 한양대 평화연구소 교수가 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모교수는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한주성 쿠키청년기자  

전문가 “탈북 학생 다수는 제3국 출생…제도 보완 필요”


한양대학교 평화연구소의 모춘흥 교수는 전체 탈북 학생 가운데 제3국 출생 비중이 높은 만큼, 이들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모 교수는 “올해 4월부터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에게도 사회통합전형을 통한 대학 입학과 학비 지원 등 교육 지원이 일부 확대됐다”면서도 “안정적인 자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 장벽을 해소하는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규 교육 과정에서 지원이 어렵다면, 지자체별 방과 후 수업 형태로라도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주거 지원과 관련해서도 법적 한계를 짚었다. 모 교수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를 직접 지원하는 데에는 제도적 제약이 있는 만큼, 탈북민 부모를 포함한 ‘가족 단위’ 접근을 통해 주거 안정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입대를 앞둔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을 위한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은 한국어와 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방부와 통일부 등 관계 부처가 협력해 입대 전후로 언어와 문화 적응을 지원하는 ‘군 복무 적응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주성 쿠키청년기자
mrjood@naver.com
한주성 쿠키청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