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8개월 만에 1480원을 넘어섰다. 외환당국이 연말 환율 안정을 위한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상승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3.8원 오른 1480.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48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 4월9일(1484.1원) 이후 처음이다. 4월은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내 정치 불확실성과 미·중 관세전쟁 격화가 맞물리며 대내외 불안 요인이 극대화된 시기였다.
환율 상승 흐름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6월 1365.15원에서 7월 1376.92원, 8월 1389.86원, 9월 1392.38원으로 올랐다. 10월에는 1424.83원으로 1400원을 넘어섰으며, 11월 1460.44원, 12월(1~22일)은 1472.96원을 기록했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국내 경제 전반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오는 30일 확정되는 연말 종가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내년 재무제표 작성 기준이 되는 만큼 부담이 적지 않다. 환율 상승으로 외화 부채가 과대 평가될 경우, 기업들이 투자 축소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고환율 흐름의 배경에는 국내 투자 매력 저하가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국내로 달러가 유입될 요인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11월까지 경상수지 흑자가 약 900억 달러에 이르지만, 같은 기간 해외로 유출된 자금은 약 1500억 달러로 추산된다”며 “약 600억달러가 더 나가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한·미 관세 협상 이후 대규모 대미 투자가 예정된 영향도 있다. 정부는 미국에 매년 최대 200억달러(약 28조5000억원)를 2000억달러 한도로 투자할 예정이다.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달러 자산으로 보유하는 경향이 확산된 점 역시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고환율 장기화에 대책 쏟아내는 정부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잇달아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외국환은행을 통한 외화 유출입을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 외국계은행 국내법인의 선물환포지션 비율 규제를 현행 75%에서 200%로 완화하기로 했다.
선물환포지션 규제는 외국환은행을 통한 과도한 외화 유입과 외화 부채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2010년 도입된 제도다. 은행별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 순포지션(선물외화자산에서 선물외화부채를 차감한 규모)의 상한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현재 국내은행과 외국계은행 국내법인은 75%, 외국계은행 국내지점(외은지점)은 375%의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 등 외국계은행 국내법인은 영업 구조가 외은지점과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국내법인이라는 이유로 그간 국내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받아왔다. 정부는 이 같은 규제가 추가적인 외화 유입을 제약해 외환시장 안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규제 완화를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완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한계도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선물환포지션 규제 완화는 차입을 통한 외환 공급을 늘려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도 “환율 상승의 구조적 요인을 해소하는 근본 대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 테스트에 대한 감독상 조치도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하기로 했다. 금융기관들이 필요 이상으로 외화를 보유하는 경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고도화된 외화유동성 스트레스테스트는 위기 상황을 가정해 각 금융기관의 외화자금 대응 여력을 평가하는 제도다.
수출기업에 대한 협조 요청도 병행하고 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18일 7대 수출기업을 불러 달러 보유 규모를 축소하고 이를 원화로 환전하는 등 외환시장 안정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은행도 외화예금 초과 지급준비금에 이자를 지급하는 조치를 통해 금융기관의 해외 운용 자금을 일부 국내로 유도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총력 대응에도 불구하고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외환시장의 ‘큰 손’인 국민연금의 역할에 관심이 쏠린다. 연말 원·달러 환율을 낮추기 위해 이르면 이번 주부터 국민연금이 대규모 환 헤지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연말 종가 기준 환율이 기업과 금융기관 재무 건전성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특단의 단기 처방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의 연장선이다.
연말 환율 1400원 중후반 전망…내년 1500원 가능성도
정부의 조치에 연말 원·달러 환율은 1400원 중후반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번주 환율 범위로 1450~1490원을 전망하면서 “정부가 연말 환율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잇따른 환율 안정 대책 발표에 이어 국민연금의 대규모 환 헤지 등을 통해 환율 수준을 낮추려는 시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재용 신한은행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번주 환율 범위를 1460~1485원을 제시했다. 그는 “당국이 환율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면서 “당국의 호위 속에 크리스마스 연휴를 거치며 달러·원 환율은 박스권에 갇힐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환율 상방 압력이 지속되며 1500원을 넘길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정식 교수는 “정부의 환율 대응으로 연말까지는 1500원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낮은 성장률과 건설경기를 포함한 내수 경기 침체 등 전반적으로 한국 경제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 내년에는 1500원 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