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흔든 사무실, 청년들은 현장으로 갔다 [쿠키청년기자단]

AI가 흔든 사무실, 청년들은 현장으로 갔다 [쿠키청년기자단]

-AI 도입으로 사무직 고용 불안 확산, 기술직 선택하는 청년들 증가
-목수·도배공·배관공, 현장에서 안정성과 직업적 성취 찾아
-전문가 “정부·기업 연계한 실무형 직업 훈련 시스템 강화 필요”

기사승인 2025-12-31 12:30:26
AI 도입으로 고용 불안을 느낀 청년들이 기술직을 새로운 진로로 선택하고 있다. 이성수씨가 경기 안성의 한 목공 전문학원에서 목조 구조물 제작 실습에 열중하고 있다. 이씨 제공 

인공지능(AI) 도입으로 고용 불안이 확산하면서 사무직 대신 생산·기술직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성수(31)씨는 대학에서 영상·디자인을 전공했다. 이씨는 2022년 졸업 후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해왔다. 올해 초까지는 대기업 통신사에서 계약직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실무를 맡았다. 그러나 업무 현장에서 AI 기술이 빠르게 도입되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면서 고용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씨는 “AI가 단순한 데이터 정리를 넘어 이미지 생성이나 콘텐츠 제작까지 해내는 걸 보면서, 디자이너의 영역도 생각보다 쉽게 대체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고용 불안을 느꼈던 데에는 디자인 업계의 채용 분위기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전과 비교해 보면 디자인 분야 자체는 오히려 더 세분되고 넓어졌지만, AI 기술 발전으로 예전에는 여러 명이 나눠서 하던 일을 이제는 한 명이 빠르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 업무 효율성은 높아졌지만, 역설적으로 전체적인 디자인 인력 수요는 줄어들면서 채용 문은 더욱 좁아졌다고 설명했다.

디자이너 계약직 기간이 끝나던 시점, 이씨는 이직 준비 대신 목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진로 방향을 틀었다. 몸을 쓰는 기술직은 AI로 대체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올해 6월부터 목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경기 안성의 한 목공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다. 현재는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자격증 취득과 실무 중심의 교육을 받으며 하루 대부분을 작업대 앞에서 보낸다.

이씨는 “기술직은 경력이 쌓일수록 노하우가 축적되고, 그만큼 개인의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며 “AI 시대에도 비교적 고용이 안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디자인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실내 목공을 직접 설계하는 인테리어 목수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남지우씨가 주거 현장에서 천장 벽지 제거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남씨는 “오래된 벽지를 뜯어내고 새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느끼는 즉각적인 성취감은 사무직에선 느낄 수 없었던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남씨 제공 

문과 전공자 가운데서도 AI로 인한 위기감을 느끼고 기술직을 선택한 청년이 있다. 대학 4학년생인 남지우(25)씨는 기독교교육학과와 중어중문학을 복수전공하고 있다. 그는 2022년부터 2년간 대학 신학연구소에서 행정 조교로 근무하며 문서 취합과 회계 장부 정리 등 사무 업무를 맡았다. 

남씨는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언제든 AI로 대체할 수 있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현실이 크게 다가왔다”고 밝혔다.

남씨가 사무직의 위기를 실감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대학 강의 시간에 접한 AI 비서였다. 그는 “AI가 비서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AI 시대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다는 걸 피부로 느꼈고, 그 길로 기술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졸업을 불과 한 학기 앞둔 올해 1월, 그는 결국 휴학을 결정했다. 이후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직을 하나씩 알아본 끝에,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다고 판단한 도배 일을 선택했다. 현재 그는 도배 일을 시작한 지 8개월 차다. 매일 다른 현장을 오가며 벽지 작업을 배우고 있다.

남씨는 냉난방 시설이 없는 현장에서 혹독한 날씨를 견뎌야 했고, 화장실조차 없는 작업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사무직이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에서 벗어난 지금이 오히려 더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남씨는 “도배 일은 손끝에서 공간이 바뀌는 과정을 직접 보며 ‘나의 작품’이라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며 “직업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했다. 이어 “지금의 어려움을 견디며 도배와 인테리어 기술을 제대로 익힌 뒤, 팀을 꾸려 활동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술직을 향한 청년들의 선택은 사무직의 불안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로 활동하다가 부상으로 기존 진로를 접은 청년 역시 기술직에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잦은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조민수씨는 배관공으로 새 출발했다. 조씨가 사다리 위에서 천장 배관 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조씨 제공  

조민수(남·28)씨는 2년 전만 해도 레슬링 선수였다. 조씨는 레슬링 훈련 중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다리 수술만 세 차례나 받았다. 결국 조씨는 다리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다. 이후 그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직업으로 배관공을 선택했다.

조씨는 배관 수리에 대해 “천장 마감재를 뜯고 좁은 틈새로 기어 들어가, 복잡하게 얽힌 파이프를 손으로 직접 풀어내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마다 변수가 너무 많아 정형화된 AI나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육체적으로는 고되지만, 조씨는 인간 고유의 감각과 숙련이 요구되는 배관공 일에서 장기적인 안정성을 보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이 기술직으로 향하는 흐름은 단순한 직업 이동이 아니라, AI 확산으로 흔들리는 고용 구조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청년들이 기술직에 도전하는 배경으로 AI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을 꼽았다. 이 교수는 “업무 자동화와 AI 발전으로 사무직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는 반면, 기술직은 숙련도가 쌓일수록 자신만의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생겨 고용 안정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기술직으로 진로를 정한 청년들이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연계한 실무형 직업 훈련 시스템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주성 쿠키청년기자
mrjood@naver.com
한주성 쿠키청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