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산과의 오랜 대화
1900년대 초, 프랑스 남부의 햇살 아래에서 세잔은 한 산과 오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산은 바로 생트빅투아르(Saint-Victoire) 산으로 세잔은 무려 80 점이 넘는 작품에 담아냈다. 그 중에서도 메트로폴리탄의 이 작품은 그의 집요한 시선과 회화적 실험의 정점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 시기 세잔은 레로브(Les Lauves)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산을 바라보며, 캔버스를 확장하고 전경과 오른쪽 풍경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그는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구조와 깊이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유화와 수채화로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그리며 그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세잔, 자연을 향한 집념과 회화의 재구성
1887년경,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한 폭의 그림을 통해 자신이 품었던 야심 찬 계획을 조용히 드러냈다. 17세기 고전주의 풍경화의 대가인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질서와 구조를 자연 속에서 되살리려는 시도는 세잔이 인상주의의 자유로운 붓질과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빛과 색채 그리고 고전의 시선
그의 작품 속 풍경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원거리 시점으로 열려 있는 화면은 푸생의 고전적 구도를 떠올리게 하지만, 색채는 인상주의를 품고 있다. 세잔은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했다.
생트빅투아르 산, 세잔의 체스 판
생트빅투아르 산은 프로방스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니지만 가장 험준하다. 길게 연결된 산맥으로 이루어진 능선은 해발 1000m로 거의 동일한 높이라서 전체적으로 직선에 가깝다.
1880년대 이후, 세잔은 몇 가지 주제를 반복해서 그렸다. 모네가 건초더미와 루앙 대성당과 에트르타 절벽을 그렸듯, 세잔에게는 사과, 세잔 부인, 레스타크 그리고 생트빅투아르 산이 있었다. 작업실 창 너머로 보이는 육중한 산의 윤곽은 마치 웅크린 거인처럼 그의 화폭에 자리 잡았다.
그는 마치 체스를 두듯, 인내심을 갖고 분석하며 수십 차례 그렸다. 이 주제에 대한 집요한 탐구는 그가 단순한 인상주의자가 아니라, 회화의 구조를 재정립하려는 전략가였음을 보여준다.
세잔의 예술적 고뇌와 철학이 응축된 상징
고집스러운 세잔은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탐구했다. 그는 하나의 선을 그리고 서너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붓을 들었다. 그래서 세잔은 100여점의 캔버스를 동시에 작업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예술적 고뇌와 철학이 응축된 상징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작품을 바라볼 때,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단지 산이 아니라, 회화의 미래를 향한 그의 집념이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화가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시각적 언어와 철학을 치열하게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리고 동료를 설득시키고 결국 비평가와 관람자들까지 자기편으로 만든 시대를 이끄는 예언자들이다.
헤밍웨이, 그림 앞에서 말하다
세잔의 <퐁텐블로의 바위> 앞에서 헤밍웨이(Hemingway)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하려는 게 바로 이거야. 이거, 그리고 숲, <퐁텐블로의 바위>, 그리고 우리가 넘어야 할 바위.”
릴리언 로스(Lillian Ross)는 1961년 “헤밍웨이의 초상”에서 이 장면을 회고하며, 세잔의 작품과 헤밍웨이의 문장이 만나는 순간을 생생히 기록했다.
1950년 <뉴요커>에 실린 로스의 “헤밍웨이 초상”은, 아바나에서 유럽으로 가는 길에 뉴욕에서 보낸 이틀 간의 이야기를 담은 진솔하고도 따뜻한 기록이다. 이 글은 논란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헤밍웨이라는 인물의 열정과 인간미를 독자에게 강렬하게 전달했다.
세잔이 그린 바위 위의 햇살과 헤밍웨이의 문장 사이에는 공통된 긴장이 흐른다.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것이다.
세잔과 엘 그레코: 300년을 뛰어넘는 예술적 대화
1926년, 미술평론가 쥘-마이어 그래프는 세잔을 “완벽하게 독창적인 예술가”로 극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독창성의 뿌리 중 하나가 무려 300년 전의 화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였다는 사실이다. 엘 그레코는 16세기 스페인에서 활동한 그리스 출신 화가로, 길게 늘어진 인체와 강렬한 색채, 신비로운 분위기로 유명하다. 개성이 넘치는 그의 그림은 세잔에게는 시대를 초월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독창성의 언어로 빚다
1880년대 후반, 세잔은 엘 그레코의 흑백 복제화를 연구하며 그의 회화 언어에 깊이 빠져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따라 그린 게 아니었다. 세잔은 엘 그레코의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해석하고 재창조하면서, 그것을 독창적인 언어로 바꾸었다.
엘 그레코의 왜곡된 인체 표현은 세잔에게 “형태를 해체하고 다시 구성하는 법”을 가르쳤고, 비현실적인 공간감은 “다각적인 시점”이라는 새로운 시각적 실험으로 이어졌다.
엘 그레코의 <참회하는 성 베드로>는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미 서부를 대표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대표작이다. 성 베드로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들고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한 죄를 참회하고 있다. 미술사조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정반합(正反合)의 수순을 보인다.
르네상스 후기(1520~1600년), 완벽하게 균형 잡힌 이상적인 인체표현에 싫증난 화가들은 바로크로 향하는 과도기에 비대칭으로 길게 늘어진 과장된 형태로 조작된 공간을 묘사했다. 또한 부자연스러운 조명으로 부자연스러운 우아함을 추구하는 매너리즘이 탄생했다.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으로 광적인 스페인의 종교적 열정을 담았다.
새순이 돋아난 어둡고 거대한 나무를 배경으로 화면 왼편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서 그리스도의 부활 소식을 듣고 베드로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베드로의 긴 얼굴과 목 그리고 근육으로 마동석 보다 건장한 몸을 하고 있다. 거기에 광택이 나는 과장된 옷주름은 베드로의 참회에 극적인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원근법으로 묘사된 천사와 막달라 마리아를 베드로와 비교하면 얼마나 과장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의 종교화 중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다. 성 베드로의 참회는 반종교개혁으로 개신교들의 공격을 받던 고해성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었기 때문이다.
하브마이어 컬렉션: 200 프랑에 7점을 사다
세잔의 <퐁텐블로의 바위>는 <생트빅투아르산>, <에스타크의 풍경>과 함께 미국의 유명한 하브마이어(Havemeyers) 컬렉션에 포함되었으며, 1901년 6월 5일, 단 200 프랑에 거래된 일곱 점 중 일부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지만, 당시엔 세잔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가 드물었다. 이 놀라운 거래는 세잔의 예술을 알아본 수집가의 안목을 보여준다.
헨리 오스본 하브마이어(Henry Osborne Havemeyer)는 미국 설탕 정제 산업의 거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특히 부인 루이즈(Louisine)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미술 컬렉션의 핵심 인물이었다.
카사트의 친구, 인상파의 수호자
이 그림은 셸번 박물관의 설립자인 일렉트라 하베마이어 웹(Electra Havemeyer Webb)이 6살쯤 되었을 때, 어머니인 루이진과 함께 한 초상화이다. 루이진은 결혼 전부터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인 메리 카사트(Mary Cassatt)의 절친한 친구이자 주요 후원자였으며, 카사트의 조언을 받아 모네, 마네, 드가 등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하베마이어 가문의 초상, 미술사의 한 장면
하베마이어 부부는 컬렉터로 미국 미술관의 기틀을 마련한 후원자였다. 그들의 방대한 컬렉션 대부분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되었지만, 이 작품을 포함한 일부 주요 소장품은 딸 일렉트라에게 상속되어, 현재 셸번 박물관(Shelburne Museum) 컬렉션이 되었다.
어머니와 딸, 인상주의를 품다
일렉트라는 어머니의 미술적 안목과 수집 철학을 이어받아, 미국 민속 예술과 유럽 회화를 아우르는 독창적인 박물관을 설립했다. 그녀의 손에 넘어간 작품들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가족의 미술에 대한 사랑이 세대를 넘어 이어진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