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전환 기간을 마무리하고 올해부터 철강업계에 대한 본격 과금에 나서면서, 글로벌 철강사들의 탄소 배출 부담이 현실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그간 철강업을 보호해온 배출권거래제(K-ETS)의 ‘100% 무상할당’ 특례가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되며, 저탄소 전환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조건’으로 부상했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전라남도 광양제철소에 연산 250만톤(t) 규모의 전기로 공사를 마치고, 올해부터 본격 가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신설 전기로는 조업 중 발생하는 고열의 배가스를 철스크랩 예열에 재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고로 방식은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기 위해 석탄(코크스)을 사용하는 구조로, 공정상 대규모 이산화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 반면 전기로는 전력을 활용해 고철을 녹이는 방식으로, 탄소 배출량을 기존 대비 약 75% 줄일 수 있다. 강화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글로벌 고객사들의 저탄소 강재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올해는 글로벌 무역 규제 패러다임의 분기점이다. 2023년 10월부터 2025년 말까지 이어진 CBAM 전환 기간에는 탄소 배출량 보고 의무만 존재했고, 실질적인 금전 부담은 없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확정 기간에 돌입해 기업이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국내에서 탄소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차액만큼 국경세로 내야 하는 구조로, 사실상 관세 부과로 작용한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탄소 비용으로 인한 수익성 훼손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한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할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인 배출량 감축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작년 3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철강 부문의 ‘건설 중인 자산’ 신규 취득액(투자 집행액)은 누적 기준 1조8896억원에 달한다. 또 ‘광양 전기로 신설’이 포함된 탄소중립 추진 총투자액의 경우 4조4233억원에 달한다. 이는 포스코가 단순한 설비 보수를 넘어, 생산 체제 자체를 재편하는 대규모 설비 투자(CAPEX)를 공격적으로 집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이번 투자의 성격이다. 과거 포스코의 CAPEX가 생산량 증대를 통한 외형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면, 이번 전기로 투자는 탄소 배출 감량을 위한 ‘시장 방어’ 성격이 짙다. 6000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입하지만 전체 철강 생산량이 드라마틱하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탄소 무역 장벽에 막혀 수출길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비용 회피 성격의 투자’인 것이다.
문제는 전기로 전환 과정에서 원가 구조 격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포스코홀딩스 분기보고서의 주요 원재료 가격 변동 추이를 보면, 작년 3분기 기준 고로의 주원료인 철광석 가격은 톤당 13만 원인 반면, 전기로의 핵심 원료인 철스크랩(고철)은 톤당 48만원을 기록했다. 탄소를 줄이기 위해 무려 3.7배나 비싼 원료를 써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고비용 구조는 곧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금융투자업계는 전기로 전환이 장기적으로 포스코의 자기자본이익률(ROE)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규모 설비 투자로 감가상각비는 늘어나는데, 원료비마저 3배 이상 급등한 상황에서 제품 가격을 조정하지 않으면 마진 축소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현욱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전기로 가동 초기에는 고가의 철스크랩 투입 비중이 늘어나며 고로 대비 마진 스프레드가 축소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늘어난 원가 부담을 ‘저탄소 프리미엄’ 명분으로 얼마나 빨리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느냐가 실적 방어의 핵심 변수”라고 설명했다.
포스코 역시 이 같은 딜레마를 인식하고 해법을 모색 중이다. 단순히 고철을 녹인 범용 철강이 아니라, 불순물을 정밀 제어한 고급 ‘그린 스틸’을 통해 원료비 상승분을 제품 가격 인상으로 상쇄하고, 가격 프리미엄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회사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2026년부터 가동 예정인 전기로를 활용해 탄소배출 저감형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기로 투자는 매출 확대 효과가 작아, ROE 하방 압력 지속시 구조적인 수익성 저하가 우려된다”며 “철저한 원가 사이클 관리를 통해 스크랩 장기 조달·헤지 방안을 마련하고, 공정 효율화와 그린 프리미엄 가격력을 강화하여 영업이익률을 방어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