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원 반팔티’ 팔아서 에르메스 제쳤다…탑텐·무신사·스파오는 어디쯤

‘2만원 반팔티’ 팔아서 에르메스 제쳤다…탑텐·무신사·스파오는 어디쯤

히트상품·해외매출·고마진 구조…유니클로의 글로벌 공식
내수 1조에서 글로벌 플랫폼으로…‘K-SPA’의 다음 과제

기사승인 2026-01-13 06:00:17
서울의 한 유니클로 매장. 심하연 기자

유니클로가 한국과 글로벌 시장에서 동시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고마진·고현금 창출형 SPA’ 모델을 확립했다. 한때 일본 불매운동과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한국 사업은 다시 안정적인 캐시카우로 복귀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는 명품 브랜드를 추격하는 수준의 외형과 수익성을 갖춘 구조로 진화했다.

한국에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는 2025회계연도(2024년 9월~2025년 8월)에 매출 1조3524억원, 영업이익 270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약 20%에 달한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469억원으로 1년 새 두 배 이상 늘었고, 3년 연속 1800억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하는 등 한국 법인은 이미 안정적인 현금 창출 기지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실적은 더욱 가파르다.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2026회계연도 1분기(2025년 9~11월) 유니클로 매출은 1조277억엔(약 9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에르메스나 케링 등 주요 명품 그룹의 분기 매출을 웃도는 규모다. 가장 최근 분기 매출과 비교하면 글로벌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2025회계연도 3분기(작년 7~9월) 매출(약 6조5000억원)보다 약 3조원 많다. 해외 매출은 6038억엔으로 일본 내수의 두 배를 넘어섰고, 해외 영업이익 증가율도 40%를 웃돌았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유럽·동남아로 매출원을 분산한 포트폴리오 전략이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유니클로의 성과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히트상품’과 ‘글로벌 통일성’이다. 히트텍과 에어리즘 같은 기능성 기본 아이템이 전 세계에서 동일하게 판매되며 규모의 경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원가 경쟁력과 재고 통제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업계에서는 유니클로가 더 이상 트렌드 중심의 패션 브랜드가 아니라 글로벌 소비재 플랫폼에 가까운 단계로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이 같은 모델은 글로벌 SPA로 성장하기 위한 조건을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공통 히트상품 보유 △해외 매출 중심 포트폴리오 △원가·재고 관리 체계 △기능성 기반의 브랜드 신뢰도를 글로벌 SPA의 핵심 요건으로 꼽는다.

국내 패션 시장에서도 대형 브랜드의 외형 확대는 뚜렷하다. 뉴발란스는 2024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조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으로, 2020년 5000억원대에서 5년 만에 두 배 이상 성장했다. SPA 브랜드 가운데서는 스파오가 1~2만원대 가성비 제품을 앞세워 2024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2년 연속 6000억원대 매출을 유지하며 국내 최대급 규모를 이어가고 있다.

탑텐 역시 의미 있는 이정표를 앞두고 있다. 2012년 론칭한 탑텐은 지난 2024년 매출 9700억원을 기록했으며, 지난해에는 연 매출 1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글로벌 브랜드가 아닌 국내 SPA 브랜드가 ‘1조 클럽’ 진입을 가시화한 것은 이례적인 성과로 평가된다. 전국 단위 오프라인 매장망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내수 판매력을 구축한 것이 성장의 핵심 배경이다.

무신사 스탠다드는 플랫폼과 SPA를 결합한 유통형 모델로 빠르게 외형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무신사 스탠다드의 온·오프라인 합산 거래액은 약 4700억원으로 전년 대비 40%가량 성장했으며, 오프라인 매장은 33개까지 확대됐다. 명동·성수·한남 등 주요 매장에서 외국인 매출 비중이 40~50%에 달하는 가운데, 상하이에 첫 해외 매장을 열고 중국 시장 공략에도 나섰다.

실제 무신사는 중국 진출 100일 만에 온·오프라인 누적 거래액 110억원을 기록했다. 티몰 내 무신사 스탠다드와 무신사 스토어 거래액은 9월 약 5억원에서 12월 44억원으로 9배 가까이 늘었고, 상하이 안푸루 오프라인 매장 개점 이후에는 온라인 매출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구매자의 85% 이상이 MZ세대로, 오프라인 경험이 온라인 구매로 이어지는 구조가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K-패션의 해외 확장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국내 SPA와 유니클로 사이에는 구조적 차이도 분명하다. 국내 브랜드들은 여전히 내수와 오프라인 중심의 성장에 무게가 실려 있고, 시즌·트렌드 상품 비중이 높아 글로벌 단일 상품으로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유니클로는 히트텍·에어리즘 같은 글로벌 공통 SKU를 기반으로 해외 매출 비중을 키우며 고마진·고현금 구조를 굳혔다.

국내 SPA와 K-패션 플랫폼도 외형 성장에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글로벌 확장의 문법이 다르다고 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SPA는 매장 수보다 ‘제품-공급망-재고’를 얼마나 정교하게 운영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유니클로는 히트텍·에어리즘 같은 대표 상품을 중심으로 원단부터 물류까지 수직으로 최적화해 이익률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어 “K-SPA가 글로벌로 가려면 전 세계에서 통할 ‘글로벌 공통 SKU’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며 “기능성 이너웨어나 기본 티셔츠처럼 반복 구매가 일어나는 카테고리에서 한국판 히트텍 같은 상징 상품을 만드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덧붙였다. 또 “해외 매출 확대도 점포 수 경쟁이 아니라 여러 시장에서 검증된 상품과 운영 모델을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포트폴리오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브랜드 신뢰도 역시 과제로 꼽힌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SPA는 가격이 아니라 기능성·내구성·사이즈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반복 구매를 만든다”며 “국내 브랜드들이 가진 기획력과 플랫폼 역량을 기본템 전략과 결합할 수 있다면, 지금의 외형 성장은 글로벌 도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하연 기자
sim@kukinews.com
심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