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섰던 LCK의 시계가 다시 힘차게 돌아간다. 비시즌 동안 숨 고르기에 들어갔던 각 팀들은 새로운 로스터와 전략을 앞세워 또 하나의 경쟁 구도를 그려낼 준비를 마쳤다. 정규 시즌에 앞서 펼쳐지는 첫 무대인 LCK컵은 올 시즌 판도를 가늠할 중요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LCK컵은 14일 오후 5시 DN 수퍼스와 KT 롤스터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뜨거운 경쟁에 돌입한다. 2025년 신설된 LCK컵은 3주 동안 반대편 그룹에 속한 팀과 그룹 대항전이라는 이름으로 맞대결을 펼친 뒤 각 그룹의 성적에 따라 플레이-인과 플레이오프에 배치되어 경쟁한다. 결승에 오른 두 팀은 시즌 첫 국제대회인 ‘2026 퍼스트 스탠드 토너먼트’에 LCK 대표로 출전한다.
바론 그룹에는 젠지, T1, 농심 레드포스, DN 수퍼스, 한진 브리온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맞서는 장로 그룹은 한화생명e스포츠를 중심으로 디플러스 기아, KT 롤스터, BNK 피어엑스, DRX가 포진했다. 먼저 바론 그룹 5팀의 전력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류’와 함께
젠지는 소위 ‘티젠한’으로 불리는 3강 팀 가운데 가장 변화가 적었다. ‘캐니언’ 김건부, ‘듀로’ 주민규와 재계약에 성공하며 주전 5인 로스터를 그대로 유지했다. 유일한 변화는 코칭스태프다. 지난 두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던 김정수 감독과 결별한 젠지는, 지난해 BNK 피어엑스의 돌풍을 주도한 ‘류’ 유상욱 감독과 무려 3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린’ 김다빈 코치와 재계약을 맺고, ‘노바’ 박찬호 코치를 영입하며 코치진 구성을 마쳤다.
젠지의 지난 시즌은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LCK,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e스포츠 월드컵(EWC) 우승을 차지하며 최정상에 오르기도 했지만, 가장 간절했던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는 결승 문턱에서 다시금 좌절했다. 롤드컵 잔혹사를 끊기 위해서는 ‘뉴페이스’ 유 감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유 감독은 비시즌 기간 쿠키뉴스와 만나 “합을 맞추는 데 시간이 적게 들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면서도 “만약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기존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는 리스크도 있다”고 짚었다. 선수들의 기량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 감독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젠지의 2026시즌 성과가 결정될 전망이다.
페이즈, ‘웰컴’
롤 e스포츠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쓰리핏’을 달성한 T1도 변화를 택했다.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였던 로스터에 손을 댔다. ‘구마유시’ 이민형의 빈자리는 ‘페이즈’ 김수환으로 메웠다. 김수환과 3년 계약을 체결한 T1은 ‘오너’ 문현준과도 재계약을 맺으며 왕조 유지를 향한 구단의 방향성을 분명히 했다. 핵심 전력을 대부분 유지한 만큼, T1은 2026시즌에도 최상위권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
변수는 김수환의 적응과 그에 따른 팀 스타일의 변화다. 강한 라인전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스노우볼을 굴리던 이민형과 달리, 김수환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피지컬을 믿고 과감한 교전을 선호하는 인파이터 성향의 원거리 딜러다. 김수환의 합류로 T1이 기존에 유지해온 운영 방식에도 일정 부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더 높은 교전 밀도와 폭발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관건은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 그리고 팀이 쌓아온 운영적 강점을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스타일과 접목시키느냐다. 이 최적화 과정이 시즌 초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헨즈 ‘라스트 댄스’ 위해 뭉쳤다…스카웃, 9년 만의 컴백
농심 레드포스는 승부수를 던졌다. ‘리헨즈’ 손시우의 마지막 시즌이 유력한 가운데, 구단은 이에 맞춰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중심에는 ‘스카웃’ 이예찬이 있다. 롤드컵 우승을 비롯해 LPL에서 오랜 기간 최정상급 미드 라이너로 활약한 이예찬은 2016년 이후 무려 9년 만에 LCK 무대로 돌아왔다. 전력 보강에 더해 팀의 방향성을 분명히 드러낸 선택이다.
로스터 구성 역시 명확한 의도를 담고 있다. 지난 시즌 LPL WE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원거리 딜러 ‘태윤’ 김태윤을 영입하며 바텀에 변화를 줬다. 파트너인 베테랑 손시우를 통해 김태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안정적인 미드와 바텀 딜러진을 갖춘 가운데, 정글에는 공격적인 성향의 ‘스폰지’ 배영준을 낙점했다. 배영준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실수는 손시우의 노련함을 통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농심의 성패는 배영준, 김태윤 등 ‘터질 듯 터지지 않았던’ 유망주들을 얼마나 빠르게 전력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베테랑과 신예를 조화롭게 엮은 이번 로스터가 손시우의 마지막 시즌을 의미 있는 도전으로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중분해’된 브리온…테디 믿고 간다
한진 브리온은 네이밍, 로스터 모두 새로운 팀이 됐다. 지난 시즌 함께했던 선수 5명과 모두 결별하며 전 포지션을 교체, 다시 한 번 리빌딩 기조에 들어갔다. 이번 변화는 결이 다르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모건’ 박루한도 잡지 못했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클로저’ 이주현을 영입하며 중위권 경쟁력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것과 달리, 이번 시즌은 보다 장기적인 구성을 택한 모양새다. 탑에는 KT 롤스터 출신 ‘캐스팅’ 신민제를 배치했고, 정글과 미드에는 농심 레드포스에서 뛰었던 ‘기드온’ 김민성과 ‘피셔’ 이정태를 영입했다. 서포터는 젠지 2군 출신 ‘남궁’ 남궁성훈이 맡는다. 바텀 한 자리는 베테랑 ‘테디’ 박진성이 지킨다.
전력상, 최하위권으로 분류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믿을 수 있는 자원은 박진성이다. 박진성이 전성기에 가까운 경기력을 회복하는 동시에, 신예 선수들의 잠재력이 얼마나 터져주느냐가 시즌의 성적을 좌우할 전망이다.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쏭’ 김상수 감독이 팀을 어떤 방향으로 운영해 나갈지도 주요 관전 포인트다.
꼴찌로 자존심 구긴 DN 수퍼스, 올 시즌은 다를까
DN 수퍼스는 최악의 2025시즌을 보냈다. 4승 26패라는 처참한 성적으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팀 전반의 경쟁력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자연스럽게 구단은 대대적인 변화를 택했다. ‘두두’ 이동주, ‘표식’ 홍창현, ‘라이프’ 김정민은 그대로 두고 딜러진을 전면 개편했다. 동부권 최고 미드 라이너로 평가받는 ‘클로저’ 이주현을 영입하며 중심에 세웠고, 바텀에는 2025시즌 롤드컵 준우승을 이뤄낸 ‘덕담’ 서대길과 ‘피터’ 정윤수를 데려왔다. 로스터만 놓고 보면 단숨에 롤드컵 진출권 경쟁을 노려볼 수 있는 전력이다.
관건은 팀워크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담당하는 홍창현을 중심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느냐가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지난 시즌 DN이 무너진 가장 큰 이유는 전력보다도 ‘불협화음’이었다. 새 얼굴로 환골탈태한 로스터가 빠르게 호흡을 맞춘다면, 중위권에서 충분히 치고 나갈 여지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시즌 전초전 격인 LCK컵에서의 완성도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