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구조적으로 둔화된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성장 중심의 정책 전환과 새로운 국가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최 회장은 18일 방송된 KBS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구조적으로 둔화되고 있는 한국 경제의 현실을 짚고, 새로운 성장 전략의 필요성을 짚었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 성장 둔화의 핵심 원인으로 정책과 행동의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한국의 성장률은 매 5년마다 1.2%p씩 하락해 왔고, 현재 잠재성장률은 약 1.9% 수준, 실질성장률은 이보다 더 낮은 1% 안팎”이라며 “잠재력이 있었지만 정책과 행동이 실제 결과로 충분히 연결되지 못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왜 건강이 나빠졌는지 원인이 복합적인 것처럼, 성장 둔화도 요인이 많다”고 덧붙였다.
성장은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도 언급했다. 최 회장은 “성장이 멈춘 경제는 브레이크가 걸린 자전거와 같아, 다시 출발하려면 훨씬 큰 힘이 든다”며 “전환이 늦어지면 자본과 인력 유출 등 리소스 탈출이 가속화돼 경제 회생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경제 성장은 청년 세대가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미래의 희망과 연결된다”고 말하며, 성장 둔화가 청년층의 불만과 이탈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장 정체가 장기화될 경우 분배 자원이 줄고 사회적 갈등이 확대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기업들이 성장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적 원인으로는 ‘성장할수록 불리해지는 제도 환경’을 꼽았다. 그는 “기업이 성장하면 혜택이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은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와 의무가 급격히 증가하는 계단식 규제가 존재한다”며 “성장을 통해 얻는 과실보다 규제와 리스크가 더 커 현상 유지를 선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강이 나빠지면 생활습관을 바꾸듯, 성장의 불씨가 약해진 상황에서는 대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성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은 지원하고 대기업은 규제하는 사이즈별 접근에서 벗어나, 성장 자체를 정책 지원 대상으로 삼고 성장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만의 산업 정책 사례도 언급했다. 최 회장은 “대만은 사이즈별 규제 대신 타깃 산업(IT)에 집중했고, 전략적 투자를 통해 TSMC를 만들었다”며 “경쟁이 없으면 대기업이 고착화된다. 많은 대기업이 유입돼 경쟁해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요인으로는 경제 형벌 문제를 짚었다. 최 회장은 경제 관련 법안에 형사 처벌 조항이 과도하게 포함돼 있어 기업 투자에 계산이 불가능한 리스크로 작용한다고 봤다. 그는 “기업은 투자 때 예상 수익, 시점, 규모 등을 계산해 리스크를 관리하는데, 징역형 같은 형사 처벌이 포함되면 감당하거나 계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며 “계산 가능한 환경이 조성돼야 과감한 투자 결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일 협력은 성장 전략의 하나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한일 양국이 EU 솅겐조약과 같은 단일 비자 체계만 도입해도 약 3조원의 부가가치가 생긴다”며 “양국을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접근하면 제3국 대상 한일 동시 방문 상품 등 다양한 시너지 창출이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AI 전략에 대해서는 문명사적 전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수준의 문명적 변화로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라고 규정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수준의 AI 인프라 구축 △AI 스타트업 전용 생태계 조성 △아이디어의 사업성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POC 지원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최 회장은 “한국에 만들어 한국만 쓰는 인프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 세계가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인프라를 목표로 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과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AI 스타트업과 관련해서도 “AI를 전제로 사고하고 조직하는 ‘AI 제너레이션’이 중심이 되는 산업”이라며, 기존 벤처 생태계와는 구분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은 새로운 성장과 미래를 만들어갈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수출과 제조업 중심 성장에 더해 K-컬처로 대표되는 문화 자산과 AI 기술, 소프트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국가 모델과 경제 서사를 만들어갈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