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으면서, 화려했던 공직 행보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행정 관료 출신으로 권력 핵심을 오가며 ‘국정 2인자’로 불렸던 한 전 총리는 결국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되며, 반세기 동안 이어진 공직 행보는 중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한 전 총리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로 공직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는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통상산업비서관과 통상산업부 차관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교통상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국무조정실장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거쳐 2007년 제38대 국무총리로 임명돼 참여정부 마지막 총리를 지냈다.
보수 정권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이후에도 그의 관운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발탁돼 3년간 대미 외교·통상 현안을 담당했다. 공직을 떠난 뒤에는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 에쓰오일(S-OIL) 사외이사 등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그는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다시 발탁됐다. 이미 총리를 지낸 인물이 재차 총리로 기용된 것은 이례적인 인사로, 관가 안팎에서는 ‘백전노장의 귀환’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야 대립이 극심한 국면에서도 총리직을 유지하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한 시련을 맞았다. 2024년 12월14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같은 달 27일 국회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직무가 정지됐다. 대통령 탄핵 이후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돼 직무가 정지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이후 총리직에서 물러난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정치 전면에 나섰지만 이 역시 순탄치 않았다.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과정에서 당원 투표에서 패배해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넘겨야 했다.
법원은 전날 선고 공판에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이진관 부장판사는 “한 전 총리는 1970년 공무원 임용 이래 50년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국무총리 등을 역임하며 다수의 표창과 훈장을 받았다”면서도 “그 지위와 책임의 무게를 고려할 때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선고 직후 “재판부의 결정을 겸허히 따르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형량 자체가 예상보다 무겁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희범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은 22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인터뷰’에 출연해 “예상 외로 아주 중형”이라며 “피고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무기징역에 가까운 결과로 평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정욱 변호사도 전날 YTN 라디오 ‘김준우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구형보다 더 높은 선고가 나와 다소 의외”라고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이 증인으로 나와 한 전 총리가 계엄을 재고해 달라고 계속 건의했다고 증언했다”며 “계엄에 찬성하지 않았고 오히려 막으려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결이 과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다만 재판부는 계엄에 대한 개인적 찬반이나 사후적 건의 여부와는 별도로, 국무총리로서 헌정 질서 수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핵심 책임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유죄 선고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이 정도의 중형은 예측하지 못했다”며 “1심 선고가 나온 만큼 항소심과 다른 관련 재판의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내란 성립 여부는 윤 전 대통령 사건을 맡은 지귀연 재판부가 계엄 행위 자체를 어떻게 판단할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며 “항소심부터 이 쟁점이 본격적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