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부터 데이터 회사라고 말했지만, 당시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 증명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죠.”
1월27일 서울 강남구 플리토 본사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이정수 대표는 13년 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2026년 현재, 플리토는 국내 인공지능(AI) 기업 중 드물게 ‘돈 버는 회사’가 됐다. 5분기 연속 흑자,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거두는 한국 토종 ‘AI 수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특례상장 1호에도 누적 적자 200억
그간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창업 7년 만인 2018년, 플리토는 이례적으로 수익 없이 ‘사업모델 특례상장’ 1호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기술성과 사업성만으로 상장을 허용하는 상징성 덕에 공모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상장 첫해인 2019년 매출은 20억원대로 쪼그라들었고, 영업손실은 57억원에 달했다. 이후로도 2020년 매출 59억원(영업손실 49억원), 2021년엔 매출 100억원을 넘겼지만, 적자는 계속됐다. 설립 후 2023년까지 단 한 번도 연간 흑자를 내지 못하니 만년 적자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주가도 한동안 지지부진했다.
챗GPT가 쏘아올린 금맥 ‘언어 데이터’
전환점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23년 챗GPT의 등장으로 전 세계에 초거대언어모델(LLM) 열풍이 불면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AI를 학습시킬 ‘양질의 언어 데이터’가 부족해지자, 빅테크 기업들이 플리토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는 “남들이 영어와 중국어에 매달릴 때, 우리는 2017년부터 캄보디아어, 아랍어, 아프리카 토착어 등 돈 안 되는 특수 언어 데이터를 모아왔다”며 “당시엔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그 데이터가 없어서 못 파는 ‘금맥’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22년 초 글로벌 IT기업과 약 54억원 규모의 첫 계약을 맺은 뒤, 2023년, 2024년 연달아 대규모 재계약을 따내며 매출이 급증했다. 그 결과 2022년 연 매출 136억원, 2023년 178억원으로 성장했고, 2024년에는 매출 203억원, 당기순이익 8억원을 거두며 첫 연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는 5분기 연속 흑자 기조를 유지 중이며, 2025년 3분기 누적 매출은 258억원으로 이미 전년도 실적을 뛰어넘었다.
1400만명이 쌓은 집단지성…‘초개인화’로 번역 시장 사로잡다
이 같은 실적 반등에는 ‘초개인화’ 기술이 있다. 2012년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으로 출발한 플리토는 텍스트·음성·이미지 등 다양한 언어 데이터를 수집·정제하며 AI 학습용 데이터 기업으로 전환했다.
현재까지 1400만명의 이용자들이 축적한 방대한 언어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맥에 따라 고유명사와 전문용어를 정확히 인식하는 AI 번역 솔루션을 개발했다. 기존 번역기가 자주 틀리는 고유명사나 업계 전문 용어를 문장 속 의미에 맞춰 자동 처리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실시간 사용자 데이터까지 반영되면서, 새로운 표현이나 신조어도 빠르게 학습학다.
이 대표는 인터뷰 도중 자사의 실시간 통역 솔루션을 직접 시연했다. 화면에는 화자를 구별하며 모든 대화가 자동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쿠키뉴스’ 를 언급하자, 플리토 솔루션은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맥락을 파악해 곧바로 고유명사로 인식해 번역했다.
그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방금 보셨죠? 처음엔 과자 혹은 발음을 오해해 ‘터키뉴스’로 인식할 뻔했지만, 문맥을 읽고 찰나에 바로잡은 겁니다”라며 웃었다.
이 대표는 “구글처럼 자체 번역기를 가진 기업도 우리 솔루션을 쓰는 건 현장에선 데이터의 디테일이 성패를 가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컨퍼런스 현장의 전문 용어와 고유명사를 맥락에 맞게 잡아내는 디테일은 데이터의 질에서 갈린다”고 강조했다.
플리토의 AI 통·번역 솔루션은 현재 애플, 메타, AWS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 행사에서 사용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주요 백화점 등 국내 주요 시설에서도 외국인 대상 통역 솔루션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경 없는 AI…미래 꿈은 “플리토 하자”
이 대표는 국내 AI 산업에 대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 대표는 “한국은 GPU나 모델 개발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AI의 밥이 되는 ‘데이터’의 중요성은 간과한다”며 “미국에는 데이터 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배 창업가들에게 “AI의 가장 큰 장점은 국경이 없다는 점”이라며 “한국 시장 먼저 잡고 해외 나가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립 15주년이 되는 2027년, 이 대표가 그리는 플리토의 모습은 명확하다. ‘일본이나 베트남 거리에서 우리 솔루션을 쓰는 걸 한 번이라도 보는 것’이다. 이어 그는 “해외여행 가서 말이 안 통할 때, 현지인이 웃으며 ‘플리토 켜자’고 말하는 날이 오는 게 꿈”이라며 “줌(Zoom)이 화상회의의 대명사가 됐듯, 플리토가 소통의 대명사가 되는 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