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보험사는 M&A 가속, 국내 보험사는 ‘걸음마’

글로벌 보험사는 M&A 가속, 국내 보험사는 ‘걸음마’

日·유럽 보험사가 이끈 국경 간 M&A 확산
국내 보험사도 해외 인수 ‘시동’…아직은 초기 단계
CEO 임기·자금 조달 규제…구조적 한계 여전

기사승인 2026-02-04 11:00:15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주요국 대부분이 저출산·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글로벌 보험업계는 해외 인수·합병(M&A)을 핵심 성장 전략으로 삼고 있다. 내수시장 포화 속에서 해외 수익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중장기 성장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일본과 유럽 주요 보험사들은 이미 국경 간 M&A를 통해 글로벌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했지만, 국내 보험사는 규제와 구조적 한계로 여전히 걸음이 더딘 상황이다.

日·유럽 보험사가 이끈 국경 간 M&A 확산

고령화가 한국보다 빠르게 진행된 일본은 보험사의 해외 M&A가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 보험사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대형 보험사를 잇달아 인수하며 글로벌 보험 플랫폼을 구축해 왔다. 2020~2025년 일본 주요 보험회사들의 해외 투자 금액은 약 30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국내 보험회사 해외 투자 규모의 약 8배에 달한다.

특히 손해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 보험사의 해외 확장이 두드러진다. 동경해상(Tokio Marine), MS&AD, 솜포(Sompo) 등 일본 3대 대형 손해보험사는 적극적인 해외 인수·합병(M&A)을 통해 해외 부문 매출과 이익 비중을 전체의 3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량 보험사를 선별적으로 인수해 지역·상품 포트폴리오를 분산했고, 이를 통해 내수시장 성장 둔화를 보완했다. 해외 수익 기반 확대에 힘입어 일본 보험회사들의 2024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8% 증가했다.

유럽 보험사들도 국경 간 M&A를 성장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내수시장 성장 둔화와 장기 저금리, 솔벤시Ⅱ(SolvencyⅡ) 체계 하 자본규제 강화라는 공통 과제에 직면한 영향이다. 프랑스·독일·스위스 지역의 대형 보험회사들은 재보험, 손해보험, 생명보험, 자산운용 등 사업 라인을 글로벌 단위로 확장하며 수익구조의 지역적 다변화와 안정성 제고에 주력하고 있다.

1816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다국적 보험사 악사(AXA)가 대표적이다. 악사는 2018년 글로벌 상업보험 및 재보험 부문 강화를 위해 XL그룹을 약 153억달러에 인수했다. 이를 계기로 손해보험 부문의 국제적 사업 기반을 확대하고 북미·아시아 등 주요 해외시장에서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밖에도 유럽 보험사들은 자본 규제가 강화될수록 지역·사업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경 간 M&A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이다.

국내 보험사도 해외 인수 ‘시동’…아직은 초기 단계

국내 보험사들도 최근 들어 국경 간 M&A에 속도를 내고 있다. DB손해보험은 지난해 9월 국내 보험사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보험사를 전면 인수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노부은행과 미국 증권사 벨로시티 지분을 인수했고, 같은 해 말 한화손보는 한화생명이 보유하던 리포손해보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총지분 61.5%의 최대 주주에 올랐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10월 영국 로이즈 보험사 캐노피우스에 5억8000만달러 규모의 추가 지분 투자를 완료하며 지분 40%를 확보, 2대 주주가 됐다. 캐노피우스는 2024년 매출 35억3000만달러, 당기순이익 4억달러, 합산비율 90.2%를 기록한 로이즈 최상급 보험사다.

과거 소수 지분 투자나 플랫폼 투자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국내 보험사의 해외 M&A는 전략의 무게감이 커졌다는 평가다. 다만 산업 전반으로 보면 아직 초기 단계다. 해외 수익 비중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인수 이후 통합(PMI)을 포함한 실행 경험도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2024년 기준 독일·프랑스·일본 주요 글로벌 보험사의 경우 총당기순이익과 총자산에서 해외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67%, 61%에 달하는 반면, 국내 보험사는 1.5%, 0.8%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사들의 해외 진출은 이미 진출한 일부 대형사에 한정돼 있다”며 “동남아 등 신흥 시장에서는 경영이 악화된 회사의 법인을 인수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선진국이나 전문 분야에서는 지분 투자와 파트너십 등 복수 전략이 병행된다”고 말했다.

CEO 임기·자금 조달 규제…구조적 한계 여전

전문가들은 국내 보험사의 국경 간 M&A가 더딘 배경으로 지배구조와 제도적 제약을 꼽는다. 국내 보험사 최고경영자의 평균 재임 기간이 2~4년에 불과해, 장기 성과를 전제로 한 해외 인수 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영진 보상 체계가 단기 실적에 연동되는 경향이 강해, 수년 뒤에야 성과가 가시화되는 해외 사업에 대해 장기 비전을 갖고 전략을 지속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주요 보험사들의 경영 환경은 이와 대조적이다. 독일 알리안츠(Allianz)는 설립 이후 약 130여년 동안 CEO를 10명만 선임하며 안정적인 경영 환경을 유지해 왔다. 슐테 노엘레와 미하엘 디크만은 각각 12년, 10년 이상 CEO로 재임하며 해외사업 확대를 일관되게 추진한 사례로 꼽힌다. 일본 도쿄해상 역시 해외 진출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갖춘 CEO를 선임해 최소 5년 이상 재직하도록 하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자금 조달 여건도 걸림돌로 지목된다. 해외 보험사들은 M&A 과정에서 후순위채 발행 등을 활용해 비교적 자유롭게 자금을 조달해 왔다. 일본 주요 보험회사들은 지급여력비율 관리에 이점이 있는 후순위채를 적극 활용해 해외 사업을 확장했다.

반면 국내 보험사는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이나 적정 유동성 유지를 위한 목적에서만 외부 자금 차입이 가능하다. 다른 금융업권과 달리 채권 발행 용도에 대한 제한이 있는 탓에 대규모 해외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유연하게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은 보험회사의 자금 차입 규제가 국내 다른 금융업권이나 해외 보험회사에 비해 경직적이어서,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반영해 제도 개선 여부를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재무건전성 충족이나 적정 유동성 유지 목적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다양한 목적의 후순위채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해외 M&A 목적의 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과정에서는 해당 보험사의 재무건전성과 경영 실적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장치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김미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