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그들이 속한 금융그룹 혹은 재벌그룹 거버넌스에 발이 묶여 목소리를 내기 힘듭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선 금융위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박유경 전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 신흥국 담당 대표는 3일 서울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개정 상법으로 달라질 주주총회, 기업의 우회전략 vs 일반주주의 대응전략’ 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10여 년의 노력 끝에 상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성과를 이뤘지만, 그는 “앞으로 2~3년은 개정된 법을 시장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박 전 댜표는 “작년과 올해를 ‘법 개정의 해’라면 앞으로 3년은 ‘시장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해’가 돼야 한다”며 “법이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며 관행이 문화로 정착되지 않으면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시장의 주체를 외국인과 국내 기관투자가, 국민주주 3개 축으로 분류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미 한국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지적하며 상당한 역할을 해왔지만 의결권 행사에서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ISS·글래스루이스)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로컬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적 의결권 정책이 한국 기업 환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에 대해서는 한층 더 비판적이었다. 그는 “대형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금융그룹 안에 있고 그 금융그룹 자체의 거버넌스가 좋지 않다”면서 “재벌그룹에 속한 운용사들도 많아 독립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런 구조에서는 시장 문화 개선을 이끌 ‘넥스트 플레이어’가 나오기 어렵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특히 금융투자협회에 대해서는 ‘상법 개정 당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며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박 전 대표는 “상법 개정을 위해 현장을 뛰던 당시 금투협에 함께 논의하자고 무수히 문을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며 “그런데 지금은 코스피 5000 달성했다고 맨 앞에서 팡파레를 울리고 있는 걸 보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는 “금융그룹 가운데 상법 개정과 관련해 그룹 차원에서 힘을 쓴 곳은 사실상 신한금융 정도뿐”이라며 “실질적인 변화는 독립 자산운용사들이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박 전 대표는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금융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장에 맡겨놓고 사실상 방치해왔다”며 “이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이제 금융위가 직접 시장 거버넌스 정착에 나서야 할 때”라고 힘줘 말했다.
그는 “해외 대부분의 시장, 예컨대 미국·일본·유럽·싱가포르·홍콩·대만 등에서는 금융규제당국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감독한다”며 “한국 시장만 유일하게 ‘나몰라라’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이제는 법이 아닌 ‘참여자’의 시간”이라며 “금융위가 직무유기를 끝내고 시장과 함께 책임을 져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