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패피(패션피플)’들이 다시 서울 DDP로 모였다. 트렌드를 좇는 발걸음과 업계 관계자, 디자이너, 바이어들의 시선이 한데 겹치며 서울패션위크 26FW의 막이 올랐다.
4일 개막한 서울패션위크는 올해 출범 25주년을 맞았다. 지난해 수주 상담액 745만달러(약 108억원)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번 시즌에는 패션쇼와 프레젠테이션, 트레이드쇼 등 주요 프로그램을 DDP로 통합 운영해 동선 효율과 프로그램 연계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이번 2026 FW 서울패션위크의 패션쇼는 DDP 아트홀 1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가오는 시즌 트렌드와 한국 디자이너 패션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조망하는 무대로, 총 15개 브랜드가 참여해 각기 다른 미학과 시선을 담은 컬렉션을 런웨이 위에 펼쳤다. 오프닝 쇼는 한현민 디자이너의 브랜드 뮌이 장식했다.
뮌을 시작으로 므아므, 곽현주컬렉션, 얼킨, 한나신, 줄라이칼럼, 데일리미러, 홀리넘버세븐 등 다양한 세대와 스타일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무대를 이어갔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이번 시즌 런웨이는 화려한 연출이나 과감한 실험보다는 옷의 구조와 소재, 실제 착용을 전제로 한 FW 아이템에 초점을 맞춘 흐름이 두드러졌다. 오버핏 실루엣과 레이어드, 아우터 중심의 구성, 소재 활용을 통한 변주가 여러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됐다.
뮌은 매 시즌 ‘낯설게하기’를 핵심 철학으로 삼아 기존 복식의 틀을 변주해온 디자이너 브랜드다. 이번 26FW 시즌에는 밀리터리 아이템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실험이 전개됐다. 클래식한 밀리터리 아우터를 허리가 잘록한 페미닌한 바디수트 형태로 재해석하고, 각진 셋인 슬리브 패턴을 둥근 어깨 라인으로 변형하는 방식으로 실루엣에 변화를 줬다. 가로 요크선을 따라 셔링을 더하거나 포장지를 감싸듯 드레이퍼리한 패턴 메이킹을 적용하는 등 구조적 변주도 눈에 띄었다. 폐종이로 니팅한 스웨터, 폐현수막으로 제작한 드레스, 고무줄을 직조한 뷔스티에 등 다양한 소재 실험을 통해 컬렉션의 완성도를 높였다.
런웨이에서는 오버핏 실루엣을 중심으로 한 뮌의 디자인 언어가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셔츠를 연상시키는 상의는 전반적으로 길게 구성됐고, 하의는 짧거나 슬림한 형태로 대비를 이뤘다. 블랙 블레이저와 재킷은 겨울 시즌임에도 각을 강조하기보다는 얇고 유연한 소재감을 사용해 둥근 선과 자연스러운 주름을 드러냈다. 실크를 연상시키는 텍스처가 적용되며 전통적인 정장 실루엣에 부드러운 인상을 더했다.
컬러 구성은 초반부 다크 톤을 중심으로 전개됐으며, 후반부로 갈수록 장식 요소와 함께 보다 다양한 색감이 추가됐다. 셋업과 아우터에는 트위드 소재가 반복적으로 사용됐고, 트위드 재킷을 데님 팬츠와 매치하거나 화이트 레이스를 더한 스타일링도 등장했다. 오버핏 블레이저로 상체에 볼륨을 주고, 하의는 짧거나 밀착된 실루엣으로 구성해 상·하의 비율 대비를 강조한 점도 눈에 띄었다.
이번 시즌 서울패션위크에는 뮌 외에도 구조와 레이어드를 키워드로 내세운 브랜드들이 다수 참여했다. 반복된 실루엣과 디자인 요소를 재구성한 컬렉션, 컷아웃과 레이어드 디테일을 통해 감정과 구조의 층위를 표현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전통 복식의 선과 겹에서 착안한 레이어 구조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컬렉션도 눈에 띄었다.
소재와 제작 방식에 대한 실험 역시 시즌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업사이클링과 재활용 소재를 활용한 컬렉션부터, 전통적 소재와 테일러링을 현대적인 실루엣으로 재해석한 시도까지 브랜드별 접근 방식은 다양했다. 다만 공통적으로는 FW 시즌에 맞는 실용성과 구조적 완성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방향성이 겹쳤다.
한편, 서울패션위크 기간 DDP에서는 K-패션의 산업적 방향을 논의하는 서울패션포럼이 함께 열린다. 포럼에서는 글로벌 경쟁력과 확장 전략을 주제로 한 논의를 진행한다. 또 네이버 등 기업과 협업해 현장 콘텐츠 확산과 온·오프라인 커머스를 연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업계에서는 이번 시즌 서울패션위크를 두고 방향성은 분명해졌지만, 다음 단계로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행사 운영을 DDP로 통합하면서 관람과 동선, 프로그램 이해도는 확실히 개선됐다”면서도 “이제는 쇼 자체를 넘어 쇼 이후 실제 수주와 글로벌 유통으로 얼마나 연결되느냐가 서패위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 바이어 유입을 늘릴 수 있는 타깃형 쇼케이스와 브랜드별 세일즈 연계, 글로벌 미디어 노출을 구조적으로 설계하지 않으면 패션 이벤트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서울패션위크가 K-패션의 실험 무대이자 동시에 실질적인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와 산업을 잇는 허브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