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주안점에 대한 질문에 캐스팅에 쏟은 노력을 답으로 내놨다. 그만큼 출연진에 대한 자부심과 믿음이 가득했다. 특히 박지훈에게서 단종(이홍위)을 발견한 뿌듯함을 숨기지 못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연출한 장항준 감독은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박지훈 씨는 젊은 사람 같지 않다. 말수도 없고 언행도 신중하다. 무엇보다 20대가 할 수 있는 깊이의 연기가 아니다”라며 만족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유해진)와 왕위에서 쫓겨나 유배된 어린 선왕 이홍위(박지훈)의 이야기다. 극중 박지훈이 연기한 단종은 기존 미디어 속 나약한 모습과 사뭇 달랐다. 모두가 결말을 아는 서사가 동력을 지닐 수 있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장 감독은 “힘없고 줏대 없는 이미지는 정치적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그릴 거면 재생산할 필요가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기록을 찾아보니까 영특하고 강단 있어서 할아버지인 세종대왕이 총애했고 대신들도 큰 인물이 될 거라고 했다더라. 그리고 적통 중 적통이고 아버지인 문종도 오래 살지 못했지만 업적이 출중하다. 강인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단종은 눈빛 연기에 강한 박지훈을 만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그의 캐릭터 표현은 물론, 인간적인 면모에 푹 빠진 장 감독은 “여느 20대 남자 배우처럼 즉흥적이고 에너지가 솟구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달라서 ‘괜찮은데?’ 했다. 유해진 씨도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다”며 “나이 들어가는 사람 입장에선 정신 사납지 않고 편했다”고 돌아봤다.
또한 “지훈 씨는 자세가 아주 좋은 배우였다”며 “선생님들이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을 왜 좋아하는지 알겠더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이러는데 이렇게 해야 예쁨을 받겠다고 생각했다. 유해진 씨가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좋아한 배우는 처음 본다”고 강조했다.
단종의 유배 생활을 함께하고 그의 버려진 시신까지 수습하는 광촌골 촌장 엄흥도 역은 장 감독의 오랜 친구 유해진이 맡았다. 먼저 장 감독은 그간 유해진이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를 “더 큰 배우로 성장하는 걸 지켜봐 왔고 보란 듯이 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확실히 성공한 사람은 다 이유가 있다”며 “대본을 손에서 안 놓고 진득하게 봤다. 대사를 외웠는데 항상 들고 생각하는 거다. 감정 신 때는 말도 못 걸었다”고 회상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끝이 정해진 작품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게 되는 힘을 갖고 있다. 비결은 배우들의 몰입이었다. 특히 엄흥도가 이홍위가 선택한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도록 돕는 장면에서 집중도는 최고였다. 장 감독은 “다들 비타민C를 많이 먹고 온 건지 매번 신나서 아침부터 기분 좋게 촬영했었는데 그날은 공기부터 달랐다”며 “유해진 씨는 당장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현장에 와서 분장 받으면서도 울었다. 박지훈 씨가 인사를 하는데 얼굴 보면 안 되겠다고 저리 가라고 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4일 개봉해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본격적인 박스오피스 경쟁은 설 연휴에 시작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조인성과 박정민의 ‘휴민트’, 최우식과 장혜진의 ‘넘버원’과 맞붙는다. 세 작품의 성적은 단순히 승자를 가리는 것을 넘어 올해 극장가가 침체를 벗어날 수 있을지 가늠할 지표가 되기 때문에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장항준 감독은 “이제 기회가 많이 없어져서 좋은 시나리오를 써놓고도 투자가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운 좋게 투자도 받고 캐스팅이 돼서 앞에 나서게 된 것”이라며 “새해부터 스타트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올해가 한국 영화에 중요한 시기라서 다른 영화 할 때보다 긴장된다. ‘만약에 우리’라는 작품이 예상을 깨고 잘 됐는데 같은 배급사 작품이다(웃음). 한국 영화가 반등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