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설탕 시장을 사실상 장악해 온 3개 제당사가 4년여간 가격을 짜고 올린 사실이 드러나며 4000억원대 ‘철퇴’를 맞았다. 2007년 한 차례 제재를 받고도 다시 담합을 반복한 데다, 공정위 조사 이후에도 가격 합의를 이어간 정황까지 확인되면서 ‘상습 담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관련 업체들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의결 발표 직후 잇따라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3개 설탕 제조·판매 사업자가 2021년 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설탕 가격의 인상·인하 폭과 시기를 사전에 합의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083억1300만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2010년 LPG 담합 사건(6689억원)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과징금은 CJ제일제당 1506억8900만원, 삼양사 1302억5100만원, 대한제당 1273억7300만원 순이다. 관련 매출액은 3조2884억원으로, 부과 기준율 15%가 적용됐다. 2024년 기준 내수 판매량 점유율이 약 89%에 달하는 과점 시장에서 이들 업체가 가격을 조정할 경우, 부담은 수요처와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CJ제일제당 “협회 탈퇴·원스트라이크 아웃”…재발 방지 총력
의결 발표 직후 CJ제일제당은 공식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책을 내놨다. CJ제일제당 측은 “고객과 소비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회사는 설탕 제조 기업들의 이익단체 성격인 대한제당협회(제당협회)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제당협회는 회원사들의 대외 소통 창구이자, 원재료 구매 시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해 왔지만, 업계 간 접촉 창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CJ제일제당은 협회 탈퇴와 동시에 임직원의 타 설탕 기업 접촉을 원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는 등 내부 징계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가격 결정 방식도 손본다. 환율·원재료 가격 등 주요 지표를 공개하고, 원가에 연동해 가격을 산정하는 ‘판가 결정 시스템’을 도입해 기업 간 개별 협의나 눈치보기 없이 투명하게 가격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준법경영위원회의 역할과 활동을 강화하고 외부 위원을 참여시켜 내부 통제 장치를 보완하기로 했다. 자진신고 제도도 도입해 임직원의 경쟁사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는 등 준법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삼양사 “조사 결과 겸허히 수용”…준법 체계 전면 강화
삼양사도 별도 입장을 통해 사과와 함께 내부 개선책을 발표했다. 삼양사 측은 “공정위의 조사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며, 일부 B2B 영업 관행과 내부 관리 체계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관련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법규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성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윤리경영 원칙과 실천지침을 개정해 공정거래법 준수 의무를 보다 명확히 했다. 가격·물량 협의 금지와 담합 제안 시 즉시 신고하도록 하는 담합행위 금지 조항을 새롭게 반영했으며, 전 사업부문의 영업 관행과 거래 프로세스를 전수 조사해 법규 위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식별·시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임직원 교육도 한층 강화한다. 전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담합 방지 특별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온·오프라인으로 실시했으며, 향후 정기 교육 체계도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영업·구매 부서에는 별도의 심화 과정을 마련해 공정거래법 이해도를 높이고, 위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지난해 11월부터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을 도입해 공정위 권고 기준에 부합하는 준법 체계를 구축·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법규 준수 문화를 조직 전반에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익명 신고 및 모니터링 강화 시스템을 구축해 임직원이 부당한 지시나 불공정 행위를 인지했을 경우 안심하고 신고할 수 있는 환경 또한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 계획”
이날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원당 가격이 상승할 때는 이를 근거로 설탕 가격을 신속히 인상하고, 하락할 때는 인하 폭을 축소하거나 시점을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대표·본부장급이 인상 방향을 정하면 영업임원·팀장급이 한 달에 최대 9차례 접촉해 실행 방안을 구체화했다. 거래처 협상도 점유율이 가장 높은 제당사가 주도하고 경과를 공유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들 업체는 2007년 같은 혐의로 제재받고도 재차 담합을 강행했으며, 2024년 3월 조사 개시 이후에도 1년 이상 합의를 유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향후 3년간 설탕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보고하도록 명령하고, 법 위반 사실 통지와 임직원 교육, 가담자 징계 규정 신설 등 재발 방지 조치도 부과했다. 앞서 3개 사는 공정위 조사 기간 중이던 지난해 7월과 11월, 올해 1월 등 세 차례 설탕 가격을 인하한 바 있다.
주병기 위원장은 “현재 진행 중인 밀가루,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담합 사건도 신속하게 처리해 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정 조치할 계획”이라며 “담합은 공정한 경쟁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불공정 행위”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