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수 트렌드에 몸 낮춘 소주…가격·정체성 모두 시험대

저도수 트렌드에 몸 낮춘 소주…가격·정체성 모두 시험대

기사승인 2026-02-22 06:00:09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소주. 연합뉴스

국내 주류 시장이 전반적인 소비 감소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소주 업계가 ‘저도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을 찾는 소비 트렌드에 맞춰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도수를 낮추고 있지만, 시장 축소와 가격 경쟁 심화, 정책 변수까지 겹치면서 저도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줄어드는 시장…소주의 선택은 ‘순해지기’

21일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최근 대표 제품 ‘진로’를 리뉴얼하며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췄다. 회사 측은 “헬시플레저 트렌드와 소비자 선호 도수 하향을 반영해 깔끔한 맛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저도화 흐름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앞서 롯데칠성음료도 대표 소주 ‘새로’의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췄으며, 지난해 7월에도 ‘처음처럼’을 16도로 조정했다. 대전·충청 지역 기반 선양 소주를 비롯한 지역 소주 브랜드들 역시 14.9~17도대 제품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주류 소비 감소와 음주 문화 변화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국내 주류 출고량은 2019년 337만6714㎘에서 2024년 315만1371㎘로 5년 사이 6.7% 줄었다. 특히 희석식 소주는 같은 기간 91만5596㎘에서 81만5712㎘로 10.9% 줄어 감소 폭이 더 컸다. 

헬시플레저 확산과 함께 혼술·가벼운 음주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소주 업계가 선택한 해법은 ‘도수 낮추기’였다. 그러나 시장 위축이라는 구조적 흐름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진열돼 있는 와인. 연합뉴스

순해질수록 흐려지는 정체성 

업계 안팎에서는 도수 인하 경쟁이 이어질수록 소주만의 정체성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유의 ‘독한 술’ 이미지와 타격감이 옅어지면서 차별성이 약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20대 직장인 이모씨는 “예전에는 소주가 가격이 저렴하고 도수가 높아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가성비 술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지금은 도수도 비슷하고 가격 메리트도 크지 않다 보니 굳이 소주를 선택하기보다 향이 좋은 하이볼이나 위스키를 마시게 된다”고 말했다. 

가격 경쟁력도 예전만 못하다. 최근 유통업계는 초저가 주류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소비자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지난해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는 1000원대 초저가 하이볼을 출시했고, 맥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스페인산 발포주 500㎖ 제품은 990원에 내놨다.

하이볼뿐 아니라 위스키와 와인 시장에서도 초저가 전략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이마트는 700㎖ 기준 5980원 가격의 위스키 ‘저스트 포 하이볼’을 출시하며 저가 위스키 시장 공략에 나섰고, 롯데마트와 롯데슈퍼는 4900원대 칠레산 와인 ‘테이스티 심플 2종’을 선보이며 가격 경쟁을 강화했다.

실적 둔화에 정책 변수까지 

시장 축소는 실적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17.3% 감소한 1721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2조 4986억원으로 3.9% 줄었고, 당기순이익은 57.3% 감소한 408억원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주류시장 규모가 전반적으로 축소된 상황에서도 매출 감소 폭을 일정 수준으로 방어했지만, 외형 축소 영향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전반적인 주류시장 소비 위축에도 매출 감소 폭을 최소화했다”며 “올해는 다양한 시장 활성화 활동을 추진하고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실적 둔화를 피하지 못했다. 연결 기준 지난해 영업이익은 1672억원으로 전년보다 9.6% 감소했고, 매출은 3조 9711억원으로 1.3%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512억원으로 14.7% 감소했다. 특히 4분기에는 영업손실 12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영업이익 92억원) 대비 적자 전환했고, 매출도 3.1% 감소한 8943억원에 그쳤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수출·해외 자회사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확실한 대외 환경과 지속되는 경기침체와 내수 부진, 주요 판매 채널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전체적은 음료와 주류 판매량이 줄어 전년 대비 매출액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여기에 정부의 세제 정책 변화도 변수로 작용한다. 정부는 올해 4월부터 2028년 말까지 하이볼 등 저도수 혼성주류에 대해 주세 30% 한시 감면을 적용하기로 했다. 알코올 도수 8.5도 이하이면서 불휘발분 2도 이상인 제품 주류가 대상이며,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은 하이볼이 대표적인 적용 사례다. 이번 조치로 소비자 가격은 15%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소주가 도수를 낮추더라도 동일한 세제 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하이볼의 우위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업계는 주종 간 대체 소비가 단기간에 급격히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가 주류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격만은 아니다”라며 “저렴한 가격이 소비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주종마다 고유한 포지션과 수요가 있는 만큼 하이볼과 위스키가 기존 소주·맥주 시장과 곧바로 직접적인 경쟁 구도가 형성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소주 도수가 낮아지는 흐름은 제조사들이 소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범위 안에서 변화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대응한 결과”라며 “저도수화 역시 소주 고유의 맛과 특성을 유지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 이러한 흐름이 무한정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